기획사 신고제서 등록제로… 성매매 알선 처벌조항 신설
“‘그녀’가 죽었습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상식이 깨진 연예계, 더 나아가 부조리한 사회에 모두가 분노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영화 ‘노리개’ 중)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지원법’ 공청회에선 연예인 지망생과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를 막기 위해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 일정 요건 이상을 갖춘 연예기획사의 활동만을 허용하는 ‘등록제’를 추진 중이다. 현행 신고제에서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반면 법 제정을 우려하는 쪽은 진입장벽을 높이게 되면 기존 연예기획사들의 기득권만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장자연 법’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이 지난 2일 공동으로 연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 지원법’ 공청회에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핵심은 대중문화 제작업과 기획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필터링을 거쳐 등록된 연예기획사는 행정기관의 지속적인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장자연이 소속됐던 연예기획사나 그간 문제를 일으킨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대부분이 일정 규모 이상을 갖췄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을 높이는 등록제가 어느 정도 유효하겠느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행정지도가 실효성을 띨 수 있느냐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연예기획사는 1000여개에 이른다. 현행법상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별도의 설립요건이 없다. 제정 법안은 일정 자본이나 전문성을 가진 사업자만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법안은 또 열등한 위치에 놓인 여성 대중문화예술인(연예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형법상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와 별도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도 마련했다. 제17조 ‘금지행위’는 대중문화예술사업자나 제작진이 연‘예인에게 ‘이익의 제공’이나 ‘약속’ 또는 ‘불이익의 위협’을 통해 성매매 알선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기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선 연예인이 (캐스팅 등) 특정 이익과 관련된 성행위를 할 경우 성을 파는 행위로 치부됐고, 연예인이 먼저 은밀한 성행위 알선을 입증해야 알선자 처벌이 가능했다”면서 “새 법에선 처벌 특례조항을 둬 피해 연예인이 면책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안은 만 15세 미만 청소년이 대중문화예술에 종사하면 일주일에 35시간 넘게 일하지 못하게 해 학습권, 휴식권, 수면권 등을 보장했다. 표준계약서 보급, 정기적 산업 실태 조사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2년 공정거래위가 일정 기준을 제시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졌다”면서 “등록제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여성 연예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경제적 착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예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이돌그룹 SS501 출신의 가수 겸 배우 김형준은 “가수로서 꿈을 키울 무렵 기획사를 발로 찾아다니며 오디션도 보고 길거리 캐스팅도 됐다. 당시에 사람들이 했던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등록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공진 연예매니지먼트협회 부회장도 “‘장자연 사건’ 이후 관련 협회 간 논의가 이뤄졌으나 이견이 많았다”면서 “현실과 법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등록제가 필요하고, 연예 매니저와 사업자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연기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기자 노조의 한 관계자는 “사회의 온갖 모순이 함축된 연예계의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선 연예기획사를 비롯한 방송사 등 사회 구성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뤄진다는 연예인의 성상납과 관련해선 사회 고위층 등 수요자를 직접 처벌하는 특례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원로 연기자도 “문제의 본질은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법의 구제를 받기 전에 사회적 강자들로부터 보복당한다는 데 있다. 제보자의 신원을 지켜주는 등 보다 현실적인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