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김래원 “대본이 너무 좋아 화가 난다”

‘펀치’ 김래원 “대본이 너무 좋아 화가 난다”

입력 2015-01-28 07:32
수정 2015-01-28 07:3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뇌종양으로 죽음 앞둔 박정환 검사 연기 “대본이 좋아 연기 더 잘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

”솔직히 그런 생각도 잠깐 했어요. 박정환, 이제 그냥 좀 내려놓지. 그만 내려놓고 가족과 남은 시간을 보내지. 그런데 박정환은 아무래도 A형인 것 같아요. 무지하게 집요하네요.”

김래원(34)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런데 웃음에도 졸음이 묻어났다.

”집 나온 지 2박3일 만에 오늘 집에 들어간다. 잠은 쪽잠을 다 합쳐 네다섯시간 잔 것 같다”는 그를 27일 인터뷰했다.

SBS TV 월화극 ‘펀치’에서 뇌종양으로 죽을 날을 받아놓았지만, 마지막 시간과 힘을 짜내 복수와 응징에 매진하고 있는 박정환 검사로 살아가는 그다.

드라마 첫회에서 바로 시한부 3개월 판정을 받은 박정환은 이제 한달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배역에 맞게 나날이 살이 빠지고 있어 안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커진 김래원은 ‘얼마나 힘드냐’는 질문에는 “에이, 괜찮다. 뭐 이쯤이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이어 “근데 대본이 너무 늦게 나오는 게 문제”라며 “대본이 너무 좋은데, 그래서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이 대본을, 이 좋은 대사들을 더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좋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한껏 실은 투정 아닌 투정이었다.

◇ “살고 싶다. 1년만, 아니 3개월만. 예린이 입학식 너무 가고 싶어”

’추적자’ ‘황금의 제국’과 함께 박경수 작가가 쓰는 ‘펀치’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가진 자들의 파워게임을 날카롭게 해부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말의 향연이 펼쳐지는 대사가 한줄한줄 압권이다. 그런데 세 작품 모두 대본이 ‘최대한’ 늦게 나오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방송 2~3일 전 대본이 나오면 제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연기의 100%를 살리긴 힘들 법도 하다.

김래원은 “예를 들어 아픈 장면에서 예전같으면 진짜 아픈 게 뭔지 표현을 했을텐데 지금은 바빠서 그저 아픈 척을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근데 아무래도 ‘엄살’인 것 같다. 극중 이태준 검찰총장을 연기하는 조재현은 앞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래원이가 정말 좋지 않나? 박정환을 잘해주고 있다. 느낌이 산다”고 칭찬했다.

김래원도 “작가님과 도중에 한번 잠깐 통화를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연기 중 지난 20일 방송된 11부 도입부의 오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박정환의 병을 엄마가 결국 알게된 후 박정환이 방에 들어가 오열하는 장면이다. 박정환은 “살고 싶다”며 울었고, 또 울음을 삼켰다.

”그 장면 몇 테이크 안갔는데 마음에 들게 나왔어요. 진짜 절절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연기를 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 “무슨 인생이 이러냐. 그놈들 벌주고 나도 벌 받는다. 그래야 떠날 수 있어. 견뎌야지. 그놈들 두고 떠나는 거 내가 정말 못견디겠다.”

박정환은 이제 서서히 기력이 떨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멀쩡해보인다. 살은 엄청나게 빠졌지만 그럴수록 눈빛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김래원은 “작가님이 한번 이런 얘기를 하셨다. 사자의 왕은 죽기 전날까지도 날이 서 있다고. 박정환이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더 막나가고 있다. 윗사람한테 더 반말도 많이 한다”며 웃었다.

”박정환이 앞에 놓인 일이 많아서인지, 일을 할 때는 자신이 시한부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서 연기하는 데는 편해요. 한두 장면 정도 고통에 신음하는 장면들 빼고는 박정환은 강합니다. 그래서 나도 강한 것 같아요. 캐릭터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하면서 연기하면 힘들었을텐데 박정환은 거의 티를 내지 않아 편해요.”

실제로 박정환은 아픈 티를 내는 것은커녕, 순간순간 벽에 막히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좌절할만한 순간에도 놀랍도록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태준 검찰총장과 윤지숙 법무장관을 끌어내리려고 돌진하지만 번번이 무릎이 꺾인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으로서는 너무 힘든 것 아닐까.

”내 딸 예린이를 괴롭히잖아요. 내 아이의 엄마를 옥살이시켰잖아요. 그리고 지금 이대로 무너지면 그들이 박정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테니까요. 박정환이 죽은 뒤 이태준이 영웅이 되는 것은 못보겠는거죠. 내 딸이 볼 교과서에 이태준이 영웅으로 나오는 건 안되는거죠.”

◇ “좋은 세상 만드는 데는 대가가 필요해. 예전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펀치’에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야망은, 욕심은 사람을 순식간에 바꾼다. 덜 나쁜 사람이 있을 뿐, 티끌 하나없는 깨끗한 사람은 ‘환상’이다.

박정환 역시 이태준의 ‘밑’을 닦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자기가 뒤통수를 맞으니 복수의 칼을 가는 것이다.

김래원은 “작가님이 우리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모든 기관, 모든 직장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그리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정환이 그리 떳떳한 입장이 아닌 것은 맞아요. 시한부가 안됐으면 이태준과 똑같이 살았을 겁니다.(웃음) 하지만 우리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깨끗함을 유지해왔던 하경(김아중 분)이도 딸을 건드리니까 원리원칙을 어기게 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게 말을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작가님이 어떻게 풀어낼지 저도 궁금합니다.”

그는 “대본이 어렵다. 한번 읽으면 이해가 안된다. 두어번은 들여다봐야 분석이 된다. 그런데 다 말이 되고 너무 좋다. 나도 매번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다”며 “그나마 지금까지는 완성도를 유지했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더 시간에 쫓기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마무리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