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 2천670건”

진상조사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 2천670건”

김태이 기자
입력 2017-12-20 12:34
수정 2017-12-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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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이름 올린 개인과 단체수 1만 추정”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 건수가 2천67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특검과 감사원이 밝힌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 400여 건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20일 서울 종로구 KT빌딩에서 가진 기자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 가운데 실제로 검열이나 지원 배제 등의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은 1천12명, 문화예술단체는 320개로 조사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발표는 2008년 8월 27일 만들어진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부터 2017년 7월 서울중앙지법이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문에 첨부한 범죄일람표까지 약 10년에 걸쳐 작성된 블랙리스트와 관련 문서 12건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다.

진상조사위는 “이번에 공개한 블랙리스트 문서 중 일부는 다른 곳에서 조사된 적이 없다”며 “오늘 발표는 지금까지 정부가 진행한 블랙리스트 조사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복 사례를 고려할 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계 개인과 단체는 약 1만 명(개)으로 추정된다”면서 “정확한 수치는 추후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특정인의 등재 이유로 2000년 ‘안티조선 지식인 선언명단’,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취임사 준비위원회’ 등을 명시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시국선언에 동참하거나 정치에 관여한 사람에 대한 검열과 지원 배제 시도가 있었음이 새롭게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위는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정치인이 도지사나 시장으로 있었던 충청북도, 전주시, 안산시, 성남시가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진상조사위는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 블랙리스트 명단이 공문서·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작성돼 실제 활용됐던 것으로 확인했다”며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화예술인을 비롯한 좌파 성향 인사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과 블랙리스트 구축이 이뤄졌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에 블랙리스트 문건이 추가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며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면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위는 또한 문자 메시지를 분석해 문체부 직원이 국가정보원 간부는 물론 경찰청 정보국 간부에게도 블랙리스트 관련 정보를 보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아울러 진상조사위는 국가정보원 정보관이 영화진흥위원회에 최승호 PD(현 MBC 사장)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자백’과 이영 감독이 성소수자를 소재로 만든 작품 ‘불온한 당신’에 대한 지원 배제를 요구한 사실도 공개했다.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특정 예술인의 지원을 배제한 양상도 새롭게 드러났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2016년 저작권 수출을 위해 초록을 번역하는 사업을 수행하면서 심사표를 조작해 ‘차남들의 세계사’, ‘삽살개가 독에 감춘 것’, ‘텔레비전 나라의 푸푸’, ‘한국이 싫어서’ 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진흥원은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을 진행하면서도 위탁도서 선정 과정에서 회의록을 조작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5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극단 마실’이 뉴욕문화원과의 매칭 사업에 선정되자 이 사업을 폐지했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민족미술인협회·한국작가회의·우리만화연대·서울연극협회 등 블랙리스트 등재 단체가 선정된 사업을 중단했다.

한편 진상조사위는 지난 8월 31일부터 3개월간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를 받은 결과, 175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공연이 51건으로 가장 많았고, 영화가 33건으로 뒤를 이었다.

진상조사위는 다음 달 17일부터 이틀간 콘퍼런스를 열어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 사항을 마련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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