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도 만리장성 쿰발가르 요새
쿰발가르 요새는 중국의 만리장성 다음으로 긴 성벽이다. 길이 38㎞, 성벽 두께는 2m나 된다. ‘인도의 만리장성’으로 부르는 이유다. 해발고도는 1100m에 이른다. 고도가 높아 기온이 평지보다 10도 이상 낮다. 섭씨 45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달리다 쿰발가르 요새에 오르면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쿰발가르 요새는 지난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접근이 쉽지 않은 산악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라자스탄주를 여행하다 보면 웅장한 요새를 많이 발견하게 된다. 라자스탄은 옛날부터 인근 왕국의 공격을 많이 받았기에 왕조마다 성벽을 높게 쌓아 침입에 대비했다. 이처럼 6개 도시에 산재한 요새 유적을 통틀어 ‘라자스탄 구릉요새’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라자만드의 쿰발가르 요새는 규모와 높이 모두 압도적이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오지이지만 여기도 사람들이 산다. 사원 마당에서는 어린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고 원색의 사리(sari·인도의 여성 의류)를 칭칭 감아 입은 여인들은 수백 년 전 만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날랐다. 쿰발가르 부근엔 고급 리조트가 몇 개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꽤 부유해 보이는 인도 가족들은 폭염을 피해 산악지역으로 휴가를 온 듯했다. 외국인은 거의 없다. 외부인을 볼 기회가 없는 쿰발가르 사람들은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내게 친밀함을 표시했다. 길을 지나갈 때면 마을 사람들은 내게 다가와 셀카를 찍어갔다. 심지어 가족사진 한가운데도 내가 서 있어야 했다. 반강제로 찍혔지만 나는 매번 웃고 있었다.
쿰발가르에선 농사를 지었다. 이모작 혹은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논에선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비처럼 뛰놀았다. 페르시아 양식의 우물에서는 소가 뱅글뱅글 돌며 논에 물을 대고 있었다. 원숭이는 나무에, 사람들은 낡은 버스에 매달려 다녔다. 아낙네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뭘 이고 다녔는데 남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볼 수 없어 의아했다. 낙타는 주인의 손에 이끌려 짐을 날랐다. 빠르게 변해가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멈춰 있었다. 요새는 높았지만 쿰발가르 사람들에겐 마음의 벽이 없었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2019-01-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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