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권력… 철은 예술… 철은 삶이다

철은 권력… 철은 예술… 철은 삶이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9-25 22:26
수정 2017-09-2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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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쇠·철·강 - 철의 문화사’

한·중·일 등 730여점 전시
무덤 속 덩이쇠들 ‘권력’ 상징
63빌딩 높이와 맞먹는 양
출토 비격진천뢰는 왜군 격퇴 필살기
‘예술’된 철불… 기술 발달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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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릉 황남대총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된 덩이쇠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신라 왕릉 황남대총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된 덩이쇠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시대의 큰 문제들은 말이나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로만 해결된다.”

유럽 평화 구도와 독일 통일을 이룬 ‘철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말이다. 이 한 문장에 인류사를 이끌어온 ‘철’의 막강한 힘이 압축돼 있다. 우주에서 날아온 운철로 만든 히타이트 제국의 고대 무기부터 현대의 우주선까지, 철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금속으로 역사를 움직여 왔다. 문명의 이기로 인간을 이롭게 하면서도 살상의 도구로 인간을 해치기도 했던 철. 그 다채로운 속성이 피워낸 문화사를 한국, 중국, 일본, 서아시아 등에서 출토된 유물 730여점으로 짚어보는 전시가 열린다. 26일부터 11월 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 ‘쇠·철·강-철의 문화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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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통솔과 승리를 상징하는 조선의 철제금은입사 사인참사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지도자의 통솔과 승리를 상징하는 조선의 철제금은입사 사인참사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철은 ‘권력’이었다. 고대 무덤의 부장품은 곧 무덤 주인이 지닌 정치·사회적 권력의 크기였다. 특히 신라 왕릉인 경주 황남대총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덩이쇠들은 철이 권력의 상징이자 화폐의 가치를 지녔음을 보여 준다. 무덤에서 나온 3200여점의 철기 부장품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덩이쇠들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243m로, 서울 여의도 63빌딩 높이와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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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청동으로 주조해 만든 길이 63㎝, 무게 360㎏의 화포 대완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848년 청동으로 주조해 만든 길이 63㎝, 무게 360㎏의 화포 대완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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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달릴 때 탄 사람이 안정적인 자세를 갖추게 도와주는 통일신라의 철제금은상감 발걸이.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말을 타고 달릴 때 탄 사람이 안정적인 자세를 갖추게 도와주는 통일신라의 철제금은상감 발걸이.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부 전시가 인류와 철의 첫 만남을 세계사적으로 조명했다면 2부 전시 ‘철, 권력을 낳다’에서는 한반도에 철기가 등장한 이후 고대부터 조선까지 철과 권력의 관계를 보여 주는 다양한 철기 유물이 등장한다. 특히 권력욕이 촉발시킨 전쟁이 낳은 갖가지 철제 무기와 갑옷들이 눈길을 끈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서 발견된 고구려 벽화무덤 퉁거우 12호분 벽화 속 개마무사(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말 탄 병사)에서 기원한 신라와 가야의 철갑 무사의 면면을 10여점의 갑옷과 투구, 입체 영상으로 구현한 전시는 전장의 한가운데 선 듯, 실감을 더한다.

보물 857호인 대완구와 대완구로 쏘면 사방으로 철 파편이 튀어 적을 공격하는 공 모양 포탄 비격진천뢰도 전시장에 나왔다. 비격진천뢰는 폭발하면 하늘을 뒤흔드는 우레 소리가 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함께 왜군을 물리친 조선 최고의 무기였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에 걸쳐 만들어진 쇠말. 마을 공동 작업을 무사히 치르거나 호환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기원하는 대상으로 쓰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에 걸쳐 만들어진 쇠말. 마을 공동 작업을 무사히 치르거나 호환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기원하는 대상으로 쓰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철은 ‘예술’이었다. 9세기에 만들어진 서산 보원사지의 철불 철제여래좌상은 양감이 넘치는 웅장한 체구,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과 유려한 옷주름 등으로 ‘통일신라의 걸작’ 석굴암 본존을 연상시키며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거친 금속인 철로 부드러운 표면과 자연스러운 표정, 옷 주름 등을 묘사한 세부 표현은 통일 신라 이후 일상으로 들어온 철을 예술로 빚어낼 만큼 선인들의 철을 다루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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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철제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9세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철제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금과 은으로 천마의 화려한 자태를 새겨 넣은 ‘철제금은상감 발걸이’에는 통일신라 시대 뛰어난 금속 공예 기술이 압축돼 있다. 3부 전시 ‘철, 삶 속으로 들어오다’에서는 이처럼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일상에 스며든 철이 생활 도구를 넘어 종교적 상징물, 예술품으로 거듭나는 극적인 변화상을 선보인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동서양을 넘어 인류가 가장 널리 사용해 온 금속인 철은 역사의 전환기를 이끄는 동력이었다”며 “인류사에서 철이 지닌 가치와 역할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는 물론 미래에도 우리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할 철의 속살을 되짚어 보시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9-2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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