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인터넷연재 중견작가 은희경
“5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지만 미리 써 놓은 원고는 없어요. 그냥 그날그날 감정선을 따라 쓰다 보면 슬픈 문장, 유쾌한 문장이 교차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가볍고 유쾌하게 써 보려고요.”은희경은 “댓글 읽으며 소설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아주 재미있다.”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두 번째 연재를 막 올려놓은 뒤 서울의 한 찻집에서 만난 은희경은 자신만의 보물을 슬그머니 꺼내 놓은 소년의 수줍음으로, 그리고 아닌 척하면서도 그 보물을 자랑하고,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줄곧 반짝거렸다. 그는 “당연히, 댓글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그중에 ‘뻔한 것 같지만, 뻔하지 않은 소설을 써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면서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은희경은 어느 누구만큼, 혹은 어느 누구보다 더 인터넷 연재의 특성을 속속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소설 중간에 사진도 함께 올리고, 도표도 올리고, 음악도 같이 올리면 인터넷으로 소설 읽기가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며 “기계적으로 정해진 분량이 아니라 긴 이야기는 길게, 짧은 이야기는 짧게 쓸 수 있는 것 아닌가.”하고 반문했다. 그 자신, 인터넷 연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고작 이틀 연재한 작가치고는 좀 떠들썩한 반응으로도 여겨진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5년부터 구상해 놓은 작품을 꼬박 4년간 묵히다가 이번에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고 고백한다.
은희경은 “17세 소년이 등장하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오니 가족소설 또는 성장소설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상투적이거나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 청소년에 대한 가치를 해체하고 전복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책임하지만 따뜻한 엄마가 가능하고, 미숙하지만 꽉 차게 여문 소년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작품의 큰 구도를 밝혔다.
사실 은희경은 이미 ‘준비된 인터넷 소설가’였다. 출간 당시 독자들로부터 ‘은희경의 첫 연애소설’로 주목받았던 장편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가 1998년 하이텔에 연재됐다. 인터넷 연재 1세대인 셈이다. 신문 연재 소설 또한 세 번의 경험이 있으니 매일매일 일정 분량을 마감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덜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런 은희경인들 걱정이 없겠는가.
그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두렵기도 해 먼저 인터넷에 연재한 동료들의 반응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랬을까 물었더니 “걱정 마. 거기 네티즌들은 모두 ‘격려쟁이’들이야.”라고 했단다.
역시 사람을 키우는 것은 비판보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다. 누가 아는가. ‘소년을 위로해 줘’ 인터넷 연재가 은희경의 흥을 돋우면 그가 매니저 겸 대주자로 몸담고 있는 문인야구단 ‘구인회(球人會)’의 야구시합에서 어느날 대주자로 나가 춤추며 그라운드를 돌지 말이다. 아니면 최근 입주한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사람들 몽땅 모아놓고 흥건하게 소주 한 잔 돌릴지 말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1-1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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