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김영사 펴냄
상상해 보자. 당신은 미국 중앙정보국 지역 국장이다. 테러 용의자를 붙잡았다. 맨해튼을 폭파할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폭탄을 설치했다고 의심할 근거도 있다. 시계는 째깍거리는데 용의자는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며 폭탄 위치를 털어놓지 않는다.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폭탄 설치 장소와 제거할 방법을 자백할 때까지 그를 고문해야 옳을까.다음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군인 4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어린 아이가 끼어 있는 현지 염소치기들을 만났다. 이들을 그냥 풀어주면 소재가 탈레반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미군들은 이들을 사살하느냐, 풀어주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국 염소치기들을 놓아줬으나 미군들은 곧 중무장한 탈레반 병사들에게 포위됐고,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구출하려던 미군 16명까지 숨졌다. 염소치기들을 사살했어야 옳았던 것일까.
자유 민주 사회에선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난무한다. 요즘 우리 사회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간다. 너무 혼란스럽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대한 여러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게 해야 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를 통해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논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27세에 하버드 최연소 교수가 된 샌델은 지난 30년 동안 정치철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정치적 논쟁을 다루며 최근 20여년 동안 하버드 최고 명강의로 꼽혔던 그의 ‘정의’ 수업을 글로 옮긴 것이다. 책의 미덕은 독자들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평등을 옹호하는 평등주의 등 저마다 정의를 대변하는 이론들의 장단점을 다양한 각도의 질문과 논쟁을 통해 스스로 살펴보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의를 바라보는 방식을 행복의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로 정리하며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근현대의 이마누엘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까지 두루 섭렵한다. 샌델 교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 정의에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의 뿌리가 깊은 것이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1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5-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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