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밍도 조작” 다큐 사진의 대가, 역사를 말하다

“트리밍도 조작” 다큐 사진의 대가, 역사를 말하다

입력 2012-12-15 00:00
수정 2012-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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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사상과 작가 정신】 최민식 지음 로도스 펴냄

“사진 속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순간으로 남아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의 작가 정신과 그 시대상을 드러내며, 이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

청년 시절 우연히 접한 미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의 가족’(The Family of Man)을 통해 사진 세계에 입문한 뒤, 55년 동안 다큐멘터리 분야의 사진에 천착해 온 최민식(84)의 말이다. ‘사진의 사상과 작가 정신’(로도스 펴냄)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로 불리는 그가 ‘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자신의 사진 인생을 풀어 낸 책이다. 한국사진가협회의 월간지 ‘한국사진’에 10년 동안 게재한 글을 모은 책으로, 사진의 본성에 대한 반성과 한국 사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 등을 담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하나다. 사진의 생명은 리얼리즘에 있다는 것. 그는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오로지 사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 리얼리즘”이라며 “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삶의 한 장면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뭔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그리고 느낄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사진이 가져야 할 리얼리즘에 대해 갖는 집착은 거의 병적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고 난 뒤 으레 하게 되는 트리밍이나 포토샵 등의 작업조차 ‘조작’의 영역에 속한다고 그는 믿는다. 작가 정신에 투철한 사진가의 시선으로 찍되 찍은 그대로 세상에 내놓아야 비로소 가치 있는 사진이 된다는 것이다.

사진의 역할과 관련해 저자가 오랜 기간 가져온 문제 의식은 ‘무엇을 위한 사진인가’이다. 그는 “세계적인 사진가들은 역사의 현장에 선 목격자로서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해 왔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며 “내용이 없고, 고뇌가 없는 작품에서는 얻을 것이 없다. 내용과 고뇌한 것이 바로 사진의 사상이며 작가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사진보다 글 위주다. 실린 사진도 1960~70년대 사진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다 가난했고 남루했던 시절의 자화상들이다. 이 지점에서 슬며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요즘도 그런 사진이 가능할까. 가난에 천착하는 것도 좋지만, 시대의 의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담아 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진가의 책무가 아닐까. ‘가난의 굴레’는 강렬한 이미지를 담아 내기 적합한 테마다. 갈등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람들의 시간을 ‘손쉽게’ 나의 시간 속에 정지시킬 수 있다.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 그 사진이 ‘보기 좋은 작품’에 불과해질 위험성을 안게 된다는 얘기와 맥이 통한다. 1만 8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2-12-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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