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노동 뒤에 마시는 한 잔… 세계 곳곳의 전통 증류주는 어떤 맛?

고단한 노동 뒤에 마시는 한 잔… 세계 곳곳의 전통 증류주는 어떤 맛?

입력 2013-03-09 00:00
수정 2013-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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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로드/탁재형 지음 시공사 펴냄

그래 맞다. 그깟 포도 좀 밟아다가 발효시킨 술 한 잔 마시기 위해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어대는 ‘신의 물방울’ 정도는 읽어줘야 하는 시대에, 그보다 더한 독주 한 잔 마시려면 대충 이 정도 표현쯤은 나와 줘야 한다. “현지의 전통 증류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일종의 접신과도 같은 체험을 한다. 한 민족이 발전시킨 먹고사는 문화의 피라미드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증류주이기에. 그리고 그 제조방법 역시 곡물이든, 과일이든, 벌꿀이나 동물의 젖이든, 그 지역의 자연이 가진 풍미의 정수만을 모으는 어려운 과정이기에. 따라서 증류주를 마시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오랜 체험과 역사를 담은 대용량 USB 메모리를 내 몸에 꽂는 것처럼 단시간에 주입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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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그라파 상점. 와인을 증류한 것이 브랜디라면 그라파는 와인즙을 짜내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발효시켜 증류한 술이다.
이탈리아의 그라파 상점. 와인을 증류한 것이 브랜디라면 그라파는 와인즙을 짜내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발효시켜 증류한 술이다.
흔히 배갈로 알려진 중국 술 바이지우를 얻기 위한 전통 증류기. 배갈은 바이지우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다. 소줏고리와 비슷한 모양새다.
흔히 배갈로 알려진 중국 술 바이지우를 얻기 위한 전통 증류기. 배갈은 바이지우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다. 소줏고리와 비슷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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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스라 서. 쌀과 누룩에다 각종 약재를 섞어 항아리 안에서 발효시킨 뒤 마실 때 물을 부어서 대롱을 꽂아 다 함께 마신다.
캄보디아의 스라 서. 쌀과 누룩에다 각종 약재를 섞어 항아리 안에서 발효시킨 뒤 마실 때 물을 부어서 대롱을 꽂아 다 함께 마신다.
그래서 ‘스피릿 로드’(탁재형 지음, 시공사 펴냄)다. 스피릿(Spirit)은 정수, 결정체라는 뜻도 있지만 증류주라는 뜻도 있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발효해서 만들어 놓은 술을 다시 한 번 끓여 그 정수만 끌어모은 게 증류주니 그럴 만하다. 저자는 10여년간 해외콘텐츠 전문 독립제작사에서 일해 온 PD. 그 길 위에서 만난 술에 대한 총평이다.

가 보기 어려운 곳에 가서 하필 왜 술 타령이냐고? USB라지 않는가. 핑계는 생겼으니, 아니 술 마시겠다는데 그딴 핑계 따위가 없으면 또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이제 한 잔씩 한 잔씩 눈으로 마셔 볼 차례다. 이탈리아의 그라파, 루마니아의 팔링거, 베네수엘라의 미체, 수단의 아라기, 말라위의 카냐주와 페루의 카냐소, 캄보디아의 스라 서, 그리스의 치구디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마룰라, 브라질의 아구아르디엔테, 덴마크의 아콰빗 등 다양한 술들이 출현한다. 유럽 지배층이 포도밭 일궈 와인 마실 생각만 할 때, 고단한 노동에 찌든 피지배층이 무얼 가져다 어떻게 만들어 먹었는지 그렸다. 그래서 술에 대한 얘긴데, 그 술을 마시는 사람들 얘기로도 읽힌다. 출장길에 멋모르고 마신 술이 생각날 수도, 아니면 꼭 한번 도전해 보리라는 결심을 할 수도 있겠다.

비교적 흔히 접하는 와인, 위스키, 맥주는 책 뒷부분으로 돌려놨다. 맥주 얘기라면 빠질 수 없는 안줏거리, 한국 맥주의 밍밍함 얘기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 맥주보다 차라리 북한의 대동강 맥주가 더 맛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도 “동의한다” 해뒀다. 그런데 이거,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하니 ‘고무찬양’이라도 되려나? 딸꾹. 1만 3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3-0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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