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 러셀 쇼토 지음/강경이 옮김/옥당/392쪽/2만 2000원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그 유명한 명제를 남긴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
‘유럽 철학이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면, 근대 유럽 철학은 데카르트에 대한 각주’라는 말 그대로 데카르트는 흔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간주한다.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였고 17세기 근대과학의 등장이며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산업혁명, 20세기 컴퓨터와 21세기 뇌과학에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연결된다는 그는 사후 관 뚜껑이 세 번이나 열리고 유골이 곳곳에 흩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왜 그런 고초를 겪어야 했을까.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은 데카르트의 유골이 도난당하고 여러 차례 옮겨지는 과정을 추적한 탐정소설 분위기의 책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매거진’ 칼럼니스트이자 암스테르담의 존 애덤스 연구원장. 탐정이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분석해 문제를 풀어내듯 1인칭 화법으로 사후 데카르트의 수난을 파헤쳐 그의 삶과 사상을 재구성해 내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데카르트에 관해 가장 긍정적인 평가는 ‘개인의 이성을 깨우고 학문의 진리를 이성으로 탐구하기 위해 애썼던 위대한 철학자’이다. 미신과 신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류로의 첫발을 내디딘 선각자였다고 할까.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의 힘을 주창하고 세웠던 만큼 왕과 교회의 절대적 힘에 편승한 당대 많은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옹호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함께 받았을 것이다.
책의 큰 흐름은 역시 데카르트의 사후 수난의 재구성이다. 이국 땅 스웨덴에서 숨을 거둔 지 16년 후 스웨덴 주재 프랑스 대사가 유골을 몰래 파내 프랑스로 옮겼고 유골이 안치된 파리 생트 주네비에브 성당이 혁명정부에 몰수될 위기에 처하면서 프랑스유물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프랑스 혁명에 공헌한 위인들을 팡테옹(국립묘지)에 모셔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생제르맹 데 프레성당으로 다시 옮겨지기에 이른다.
책의 특장은 단지 데카르트 유골의 수난 과정 찾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의 유골을 추적하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서양 근대사를 장식한 굵직굵직한 명장면과 인물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계몽주의자들의 비밀모임이며 프랑스혁명 절정기의 파리, 프랑스 아카데미데시앙스의 학회실, 초창기 인류학회의 현장들이 실감 나게 소개된다. 결국 사후 데카르트의 수난사는 유골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성의 각축전이자 근대 철학·과학의 발전사였음을 보여주는 저자는 책에 이렇게 적고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그 유명한 명제를 남긴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은 데카르트의 유골이 도난당하고 여러 차례 옮겨지는 과정을 추적한 탐정소설 분위기의 책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매거진’ 칼럼니스트이자 암스테르담의 존 애덤스 연구원장. 탐정이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분석해 문제를 풀어내듯 1인칭 화법으로 사후 데카르트의 수난을 파헤쳐 그의 삶과 사상을 재구성해 내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데카르트에 관해 가장 긍정적인 평가는 ‘개인의 이성을 깨우고 학문의 진리를 이성으로 탐구하기 위해 애썼던 위대한 철학자’이다. 미신과 신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류로의 첫발을 내디딘 선각자였다고 할까.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의 힘을 주창하고 세웠던 만큼 왕과 교회의 절대적 힘에 편승한 당대 많은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옹호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함께 받았을 것이다.
책의 큰 흐름은 역시 데카르트의 사후 수난의 재구성이다. 이국 땅 스웨덴에서 숨을 거둔 지 16년 후 스웨덴 주재 프랑스 대사가 유골을 몰래 파내 프랑스로 옮겼고 유골이 안치된 파리 생트 주네비에브 성당이 혁명정부에 몰수될 위기에 처하면서 프랑스유물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프랑스 혁명에 공헌한 위인들을 팡테옹(국립묘지)에 모셔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생제르맹 데 프레성당으로 다시 옮겨지기에 이른다.
책의 특장은 단지 데카르트 유골의 수난 과정 찾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의 유골을 추적하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서양 근대사를 장식한 굵직굵직한 명장면과 인물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계몽주의자들의 비밀모임이며 프랑스혁명 절정기의 파리, 프랑스 아카데미데시앙스의 학회실, 초창기 인류학회의 현장들이 실감 나게 소개된다. 결국 사후 데카르트의 수난사는 유골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성의 각축전이자 근대 철학·과학의 발전사였음을 보여주는 저자는 책에 이렇게 적고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3-10-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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