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정영효 첫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
시인 정영효(36)가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탐구했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이후 6년 만에 펴낸 첫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문학동네)에서다. 시인은 “리얼리즘 계열의 시를 추구하진 않지만 최근 대형 사건이나 사고를 많이 접하면서 개인의 존재란 무엇일까, 나와 공동으로 묶이는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시인 정영효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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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에 비친 공동체 속 개인은 ‘나’라는 자아가 없다. ‘하나의 길만 믿었다 하나의 출구를 찾았다 고요함도 시선도 하나뿐인 게 이상했다 여태 우리가 모으지 못했던, 하나라는 것은 모두 평화로울까.’(해결책)
‘폭설에 오랫동안 고립되었다 길이 막혔고 음식은 모자랐고//지금 필요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중략) 예외 없이 주저하다 예외 없는 암묵에 동의했다 여기서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반대로 묻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가장 가까워지고 있었다.’(같은 질문들) “믿음은 불완전하다. 분명한 듯 보이지만 분명하지 않은 믿음들도 많다. 허상이나 거짓, 혹인 진실처럼 보이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허상, 거짓을 믿음으로 알고 계속 쫓아간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같이 가니까 어쩔 수 없이 같이 쫓아간다.”
‘우리의 목표’를 따라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나씩 준비해서 하나로 끝내는 일을 시작하였다 너는 탑을 쌓아올리고 나는 돌을 나른다 탑을 완성하면 소원을 빌기로 했지만 그건 아직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중략).’(이미 시작하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목표가 설정되면 그 목표를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관계를 형성, 유지한다. 사람들은 목표에만 집중하고 목표만 바라본다. 목표가 사라지면 개인도 붕괴될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 속 개인은 ‘극장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 섞여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한쪽으로 바라보며’(관람) ‘싸움이 시작됐는데도 말리지 않는다.’(관객)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늘 바라보면서 타자로 존재한다. 한쪽에 있으면서 한쪽만 생각한다. 저쪽 일이니까 상관없다며 서로 미루고 방심한다.”
시 제목으로 추상명사를 많이 붙이는 점이 특이하다. “머릿속에 떠오른 걸 쓰다 보면 내용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제목으로 추상명사가 주로 떠오른다. 시와 제목이 완전히 부합하지도 않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목과 내용 사이의 여백을 독자들이 메워 주면 좋겠다.”
시집에는 시 51편이 실렸다. 초기작보다는 등단 3년 이후 작품 위주로 선별됐다. 작품 가운데 80%가 최근 2년 안에 쓴 것들이고, 나머지는 기존 것들을 완전히 새로 다듬었다. “등단한 지 3년쯤 지나니까 앞서 썼던 시들에 대해 고민이 들었다. 더 새로운 지점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 스타일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이 시를 다시 쓰게 했다.”
시인은 등단 당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로 상상력을 끌어와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화려한 등단과 달리 삶은 고단했다. 고교 문창반 강의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신춘문예 등단 시인들은 청탁 원고는 물론 아르바이트 들어오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다 해야 생계가 가능하다. 시들을 읽으며 어떤 생각의 지점들을 함께 공유하거나 시들이 어떤 생각의 지점들을 던져줄 수 있다면 큰 의미가 될 것 같다. 그런 의미가 된다면 삶이 힘들어도, 독자가 많든 적든 시를 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1-2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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