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덕에 결혼하고 축구 에세이까지 낸 ‘성덕’ 부부

축구 덕에 결혼하고 축구 에세이까지 낸 ‘성덕’ 부부

이슬기 기자
입력 2019-09-24 20:40
수정 2019-09-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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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덕’ 김혼비·박태하 부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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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덕 에세이스트’ 박태하(왼쪽)·김혼비 부부가 ‘애정하는’ 성남FC의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얼굴 노출을 원치않는 김혼비는 성남FC의 축구공으로 얼굴을 대신했다. 6년차 부부인 이들이 서로에게 ‘입덕’한 계기도 축구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디르크) 카윗 같다’는 말이 나왔는데, 정확히 알아듣더라고요.”(김혼비) 네덜란드의 전 축구선수로 박지성과 동시대에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카윗은 그들 말에 따르면 “열심히는 하는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짠하고 애매한 선수”다. 김혼비라는 필명이 영국의 축덕 작가 ‘닉 혼비’에서 비롯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축덕 에세이스트’ 박태하(왼쪽)·김혼비 부부가 ‘애정하는’ 성남FC의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얼굴 노출을 원치않는 김혼비는 성남FC의 축구공으로 얼굴을 대신했다. 6년차 부부인 이들이 서로에게 ‘입덕’한 계기도 축구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디르크) 카윗 같다’는 말이 나왔는데, 정확히 알아듣더라고요.”(김혼비) 네덜란드의 전 축구선수로 박지성과 동시대에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카윗은 그들 말에 따르면 “열심히는 하는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짠하고 애매한 선수”다. 김혼비라는 필명이 영국의 축덕 작가 ‘닉 혼비’에서 비롯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SNS에 여자축구 체험기 쓰던 회사원 金
잡지에 글까지 쓰며 축구 사랑의 길 실천
“느리고 알아서 노는 詩적인 매력이 재미”
2002년 한일월드컵서 K리그 천착한 朴
“월드컵 통해 세계와 이어주는 것도 마력”


축구를 통해 서로에게 ‘입덕’(덕후가 되다)한 부부가 나란히 축구 에세이를 냈다. 김혼비(필명·38)·박태하(39) 부부다. 순서대로 지난해 아내가 먼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민음사)를, 남편이 최근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민음사)를 출간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부부는 사진 촬영을 위해 부부가 응원한다는 성남FC 유니폼과 축구공을 챙겨 왔다. “이거 어제 ‘직관’(직접 관람하다) 가서 사온 거예요.” 어쩐지 공 표면이 반짝반짝했다.

두 사람이 축구 에세이를 쓴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데는 잡지 릿터 서효인(38) 편집장 공이 컸다. 15년차 출판편집자인 박태하는 2015년 출간한 ‘책 쓰자면 맞춤법’(엑스북스) 예문을 성남FC 얘기로 도배하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혼비는 페이스북에 여자축구 체험기를 주기적으로 올렸다. 이들 부부 글은 야구 에세이를 썼던 ‘스포츠 친화 편집자’인 서 편집장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렇게 박태하는 ‘릿터’ 창간 때인 2016년 8월부터, 김혼비는 다음해 ‘릿터’에 지극한 축구 사랑을 읊는 것으로 에세이스트의 길을 걷는다.

‘왜 하필’이라는 말이 무색한, 둘의 축구 입덕 경로는 ‘어려서부터’다. 그 가운데서도 박태하가 해외 축구가 아닌, K리그에 천착하게 된 데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붉은 악마가 수놓았던 ‘CU@K리그’가 한몫했다. 연고도 없는 성남을 응원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자발적 선택이었다. 서울에 살긴 하지만 직관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성남FC를 응원하게 된 데에는 특히 황의조라는 신인 스트라이커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컸다. ‘스텝 오버(헛다리 짚기) 달인’ 브라질 호나우두를 좋아했던 김혼비는 박태하를 만나 처음 축구장에 갔다가 직관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축구 리듬을 내 몸으로 직접 타고 싶다는 충동은 그를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게 하는 데까지 이끌었다.

이토록 두 사람을 하나 되게 만드는 축구의 매력, 아니 마력은 무엇일까. “공간의 미학이 다른 어떤 운동보다 잘 구현돼요. 다양한 유형의 패스와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공간을 뚫어내야 하는 게 가장 매력적입니다. 자기 지역과 내 팀에 강한 정체성을 갖고 그것이 국가 버전으로 확장된 월드컵까지 이어지며 세계와 이어지는 점도 좋아요.”(박태하) “야구는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바로 바로 알 수 있고 농구는 패스가 빠르죠. 축구는 뭔가 느리고, 그라운드에 저 혼자 던져져서 ‘알아서 놀아봐라’ 하는 느낌이어서 낚시같이 지루한 면이 있어요. 보는 사람이 찾아서 적극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게 재밌었어요.”(김혼비) 그런 점에서 “축구는 시(詩)적이다”고 김혼비는 말했다.

한 가지 대상을 향한 둘의 글은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있다. 박태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지극할 수 있을까 싶게 K리그를 향한 덕심을 결결이 썼다. 김혼비의 글은 호나우두의 ‘스텝 오버’처럼 휘몰아치는 비유가 ‘꿀잼 모먼트’다. 그러나 글 전반에 흐르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착은 공통점이다. K리그도 KBO나 월드컵, 해외 유명 리그에 비해서는 ‘마이너’하고, 여자축구는 말할 것도 없기 때문. “K리그도 여자축구도 인기가 없지만 이 사람들 세계에서는 우주잖아요. 이 격차가 주는 감동이 있어요.”(김혼비) “가지려고 가진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이 와서 나를 흔들 때 보면 그게 ‘마이너리티’였어요. 매끈하고 잘 굴러가는 세계에는 크게 매력을 못 느껴요.” 이어 박태하는 덧붙인다. “성정이에요, 성정.”

축구 얘기에 이어 지난 6월부터 부부는 릿터에 팔도 축제 유람기 ‘전국 축제 자랑’을 연재한다. 둘이서 함께 에세이를 쓸 때 보통은 분량을 나눠 쓰거나 돌아가며 쓰지만 이들은 다르다. 휘몰아치는 김혼비가 초고를 쓰면, 꼼꼼한 박태하가 손보고, 이를 다시 김혼비가 수정하는 식이다. 이 비효율적인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두 사람 문투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한 사람 호흡처럼 느껴져요. 기본적으로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둘한테는 어울려요. 둘 다 비효율적인 인간이고요. 하지만 그들에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죠.” 옆에 있던 서 편집장이 첨언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09-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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