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동물사
이종식 지음
동아시아/188쪽/1만 5000원
돼지 복지
윤진현 지음
한겨레출판/328쪽/2만원
1826년 영국 런던에서 제작된 광견병 관련 포스터. 19세기 주인 없이 거리를 떠도는 개들은 광견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런던, 파리, 뉴욕 시민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 때문에 떠돌이 개들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해 공공연한 대량 살처분이 시행되기도 했다.
동아시아·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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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동물의 권리나 동물 복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동물 권리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려동물과 육식을 위해 키우는 동물들 모두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는지, 인권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나라가 여전히 많은데 동물권을 주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권과 동물 복지가 의외로 많은 생각 거리를 던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근대 유럽 동물원의 원조 중 하나로 꼽히는 하겐베크 동물원을 만든 동물 매매업자 칼 하겐베크가 동물들과 함께하는 모습. 하겐베크는 창살 속에 동물을 가두는 방식의 동물원이 자신의 동물 거래사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해 사파리 방식의 동물원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동아시아·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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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동물사’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동물사’라는 주제로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를 말한다. 동물사는 영미권 학계를 중심으로 최근 15년 동안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분야로 ‘동물의 희로애락에 최대한 근사치로 접근하기 위한 학문적 시도’다. 과학사학자인 이종식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도시를 중심으로 현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보여 준다.
●18세기 광견병 우려로 살처분
요즘도 간혹 버려진 개들이 난폭해져 사람을 공격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 오며 그에 따라 유기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약 200년 전인 18세기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떠도는 개들이 도심 거리에 늘어나면서 광견병을 퍼뜨리는 원흉으로 지목받았다. 그래서 당시 뉴욕에서 거리를 떠도는 개들을 잡아들여 강물에 수장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살처분했다는 장면에서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또 사파리 형태의 동물원도 알고 보면 야생동물 매매업자가 자신이 하는 동물 거래사업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 한 조치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임신한 돼지를 케이지 안에 가둬 사육하는 스톨 사육 모습. 임신한 어미 돼지를 편하게 관리할 수 있고, 돼지들끼리의 먹이 경쟁이나 서열 싸움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이 쓰이는 사육 방식이다. 돼지는 본래 앉는 자세를 취하는 동물이 아닌데 스톨 안에서 임신돈은 대부분 눕거나 앉아 있다.
동아시아·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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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돼지 복지’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기인 삼겹살을 제공하기 위해 돼지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발적 성격이 강하다. 공장식 축산 문제를 최초로 고발하며 현대사회 축산 시스템에 경종을 울린 루스 해리슨의 ‘동물 기계’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동물복지 인증 양돈사의 비육사에서 쉬고 있는 돼지들. 스톨 사육사에 있는 돼지들과 달리 편안함이 느껴진다.
동아시아·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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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문화가 기후 위기 주범으로 지목되고 동물권이 강조되면서 채식주의 담론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활발하다. 그렇지만 “돼지의 복지를 위한다면서 돼지를 애지중지 키워 잡아먹는 것은 괜찮나”라는 질문처럼 동물권과 육식의 윤리성이 강조되면서 동물을 불편하게 하는 현재 축산 시스템의 개선 필요와 농장 동물의 삶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저자는 꼬집는다. 동물 복지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동물 복지를 관념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핀란드를 비롯한 동물 복지 선진국에서 연구한 경험과 한국 실정에 맞는 고유한 축산 시스템을 제시하는 등 실증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실정과 다른 외국 사례만 늘어놓은 책보다 훨씬 잘 읽힌다.
인간과 의사소통할 수 없는 동물이 진짜 원하는 권리와 복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짜 동물권과 동물 복지는 많은 종교에서 말하는 ‘황금률’처럼 “인간이 싫어하는 일을 동물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2024-06-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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