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찾는 여정, 가족과 지구의 소중함 느끼다

새를 찾는 여정, 가족과 지구의 소중함 느끼다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4-07-05 00:30
수정 2024-07-0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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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걸/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지음/신혜빈 옮김/문학동네/464쪽/1만 9800원

가족과 함께 새 5000여종 관찰
서식지 파괴·인종차별 현장 목격
블로그로 환경·다양성 운동 전개
희귀종 만나면서 질병·고통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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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썹앨버트로스(왼쪽). 2m가 넘는 길고 얇은 날개 덕분에 날갯짓 한번 없이 바람을 타고 대양을 건너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넓적부리도요(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새로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새다. 러시아 북동부에서 번식하며 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난다. 주걱 모양 부리가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칼부리벌새(오른쪽). 부리가 유달리 길어 여타 새들과 다르게 깃털을 단장할 때 부리가 아닌 발을 쓴다. 문학동네(믹 매닝) 제공
검은눈썹앨버트로스(왼쪽). 2m가 넘는 길고 얇은 날개 덕분에 날갯짓 한번 없이 바람을 타고 대양을 건너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넓적부리도요(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새로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새다. 러시아 북동부에서 번식하며 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난다. 주걱 모양 부리가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칼부리벌새(오른쪽). 부리가 유달리 길어 여타 새들과 다르게 깃털을 단장할 때 부리가 아닌 발을 쓴다.
문학동네(믹 매닝) 제공
여기 새에 홀린 가족이 있다. 엄마 아빠는 새를 보기 위해 결혼식을 한 시간 늦춰 달라고 사정하고 겨우 열여덟인 첫째 딸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도 새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심지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엄마의 우울을 맞닥뜨렸을 때도 탐조(探鳥) 휴가를 떠나는 게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버드걸’은 탐조인이자 환경·다양성 운동가인 마이아로즈 크레이그(22) 가족의 삶을 담은 에세이이자 여행기다. 크레이그 가족에게 탐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도피 역시 아니다. 크레이그는 탐조를 ‘삶의 무늬를 이루는 실’이라고 말한다. “너무도 단단히 엮여 있기에, 나머지 내 삶을 건드리지 않고 그것만 뽑아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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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로즈 크레이그. 문학동네(마크 브리든) 제공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문학동네(마크 브리든) 제공
크레이그는 일찌감치 예견된 엘리트 탐조인이었다. 태어난 지 9일 만에 가족과 함께 탐조 여행을 떠났으며 두살 때 ‘파슈’(새를 끌어내 탁 트인 곳으로 나오게 하는 소리)를 배운다. 일곱살 때 정해진 지역 안에서 1년 동안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새를 보러 다니는 대회인 ‘빅 이어’에 참가한 이후 열일곱살이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전 세계에 알려진 새 가운데 절반(5000종)을 관찰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미 10대 때 남극을 포함한 7개 대륙, 40개국을 여행하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가족이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책에는 에콰도르, 가나, 호주, 방글라데시, 남극 등 각 지역의 색채를 담고 있는 230종 이상의 고유종, 희귀종 새들에 대한 묘사와 작가의 생생한 감상이 담겼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갯벌에 들러 먹이를 먹는 넓적부리도요새부터 1만 6000㎞를 쉬지 않고 비행하는 검은눈썹앨버트로스, 숲의 지배자 같은 모습을 한 리젠트바우어새 등이 등장한다. 특히 그에게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인 하피수리를 만났을 때는 “환희, 놀라움, 안도, 불신 등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세차게 밀려들었다”고 소회를 밝힌다. “긴장은 물러가고 흥분이 찾아왔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새에 집중했고,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9년 동안 나는 이 멋진 생명체를 보려고 애타게 기다려 왔고, 지금 이곳에 그 새가, 그녀가 있었다”고 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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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 여행을 통해 그는 서식지 파괴가 인간과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목도한다. 또 가시적 소수 인종(자신을 비백인으로 간주하는 인종 집단)으로서 과거 인권을 짓밟는 일이나 인종차별이 자행됐던 지역, 빈부 격차가 극명한 현장과 마주한다. 이런 자극은 ‘버드걸’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크레이그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실제 삶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도록 이끈다.

크레이그 가족에게 새는 ‘의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흡수’하는 존재로 언제나 정확하게 가족이 필요로 하는 걸 줬다. 양극성 장애로 고통받는 엄마의 존재는 크레이그 가족의 탐조 여행이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음을 보여 준다. 끝나지 않는 자살 충동과 수면 부족, 공황 발작으로 괴로워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가족은 기꺼이 여행을 선택한다. 엄마는 탐조에 몰두해 자연을 돌아다닐 때면 의욕이 넘쳤고, 특히 다 함께 희귀종을 보는 순간만큼은 삶에서 유리되었다는 감각에서 벗어나 오롯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좋았던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일상의 이중성에서 오는 괴리, 가면 증후군, 공황 발작 등 어두컴컴한 긴 터널을 지나왔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새를 찾아다니는 시간은 무엇보다 크레이그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 됐다고 고백한다. “새들의 단순하고 본능적인 삶의 방식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귀기울여 듣고, 자세히 보고, 끈기를 발휘하도록 이끌었다”고 말이다.

2024-07-0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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