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건국대 한국기호학회 춘계학술대회 특별강연 주목
“10년 전부터 ‘옛 장인들은 모든 것을 보주(寶珠)로 표현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심지어 2만년 전의 신석기 시대 인간들도 그랬다는 것을 확인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근교 구석기 시대 지층에서 발굴된 11.1㎝ 높이의 여자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얘기를 꺼내며 강우방(78)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은 지난 22일 소년처럼 눈을 반짝였다. 채색분석 기법으로 분석한 이미지들을 들여다보며 탄성을 자아내는 모습도 영락없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이상적으로 표현한 여성상이다. 커다란 유방에다 허리는 굵기가 이를 데 없고 배는 볼록 나와 있다. 지방이 풍부한 엉덩이에다 성기가 강조돼 생식과 출산, 다산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강 원장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머리와 유방, 둔부, 넓적다리, 종아리 등이 모두 구체(球體)를 지향, 다시 말해 보주로 표현한다. 모자를 쓴 것이 아니고 머리에서 작고 둥근 보주들이 발산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강우방 원장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로 알려진 이 조그만 조각상이 2만여년 전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만물의 영험한 기운의 압축인 보주를 집적한 대모지신이라고 규정한다. 문자언어로는 해독할 수 없는 조형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면 인류의 인식 지평을 300만년 전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빈 자연사 박물관 제공 자료사진
빈 자연사 박물관 제공 자료사진
인류의 무의식 저밑바닥에 ‘열매는 곧 보주’란 태고의 기억이 DNA처럼 새겨져 면면히 이어져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인도, 간다라 불상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했던 강 원장은 불교의 석가여래상이나 마리아상 역시 보주임을 밝혀내고 20년 전부터 인류가 창조한 일체의 조형예술품을 분석해 조형언어가 존재함을 알아내고 해독했다. 우주의 기운이 압축된 소우주이며 인간이 보주의 집적이자 소우주임을 구석기 시대 작은 조각이 웅변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강 원장은 “앞으로는 빌렌도르프의 대모지신(大母地神)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한다. 여래와 보살과 마리아 모두 우주의 기운을 압축인 보주를 표현한 것으로 문자언어의 틀을 뛰어넘어 조형언어로 해석해야만 풀린다는 주장이다.
그의 인식은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100이라 생각하면 문자언어에 의지하여 말하고 기록하고 연구하는 기간은 1%에 불과하며 5000년의 문자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광범위한 300만년의 조형언어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고 했다.
강 원장은 “조형언어란 것이 존재했다는 진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찾아냈고, 그 조형언어를 올바르게 해독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감히 자부한다”며 “자연과 조형예술품이 영화(靈化)되는 과정을 이해해 새로이 정립한 이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자언어에 상대하는 조형언어를 발견해 해독해낸 것은 인류사의 획기적 사건이고, 그 범주 안에서 빌렌도로프의 비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사고까지 엿보는 사상사의 혁명적 시작임을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밤늦게 홀로 연구원의 불을 밝히며 조형언어와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 조형언어를 해석하는 채색분석법으로 1만점의 조형예술품을 분석하는 그의 발걸음이 미술사학을 넘어 기호학으로 진입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마침 한국기호학회(오장근 회장)의 춘계학술대회 ‘라이프 스타일의 기호학-1인 컬처와 테크놀로지 일상’ 특별강연에 초빙돼 자신이 발견한 조형언어기호학을 주제로 펼쳐놓게 된다. 오는 27일 오후 1시 서울 자양동 건국대학교 경영관 301호에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이며 여느 학술발표회라도 파격이라 할 만한 한 시간이 주어졌다. 이날 여의치 않다면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서울 세검정에 있는 그의 연구원에서 이어지는 수요 강연을 듣는 방법도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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