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 그의 꿈] 쉼박물관 설립자 박기옥 여사
40년간 살아오고 있는 자신의 집을 개조해서 만든 박물관이 있다. 이름은 ‘쉼박물관’. ‘쉼’은 ‘쉬다’의 명사형이니 죽음을 영면(永眠)이라 하는 이유도 ‘쉼’의 의미와 통한다. 이 박물관을 설립한 박기옥 여사가 박물관의 이름을 ‘쉼박물관’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박 여사는 인간의 죽음을 소멸이 아닌 긴 휴식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왜 삶이 아닌 죽음인가.生無百年死千秋 사람이 나서 백년을 누리기는 어려우나 죽어서는 천추를 누리니
顔面歸客靑山有 돌아가는 객의 낯빛 속에 청산이 어리었구나
萬金有錢空手去 만금의 재물은 모두 덧없는 것이니
我身何處靑山向 이 몸은 어디에 들거나, 청산으로 가리라
박물관 벽에 걸려 있는 명문목판(銘文木板)의 글귀다. 살아서 누렸던 온갖 부귀가 다 부질없던 것이었음을 깨닫고, 몸 하나만 청산으로 돌아가서 천추를 누리겠다는, 죽음에 대한 수용과 긍정의 자세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처럼 쉼박물관은 죽음과 관계된, 우리나라 전통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쓰이던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남편입니다. 건강하던 남편이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죽음은 숙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남편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사람은 탄생의 날을 통과해 세상에 왔다가, 죽음의 문을 통과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요. 이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오래 전부터 수집해 온 것들로 전부가 다 상례와 제례에 쓰이던 물건들이라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 걱정했는데, 가정집을 박물관으로 꾸며놓아서 그런지 찾는 분들이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고들 하세요.” 수집벽은 박 여사의 천성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적인 것을 좋아해 나막신, 도롱이, 떡살 등 우리의 생활과 관계된 많은 물건들을 모아 온 지 50여 년. 여기엔 박 여사가 이화여대에서 사학을 공부했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장안동, 인사동, 청계천 등의 골동품상들을 찾아다니며 꽃, 인물, 새, 도깨비 등 장례 때 운구에 쓰였던 상여에 부착하는 목조 조형물들에 특히 매료되어 이것들을 오래 전부터 수집해 왔다. 2007년 10월에 개관한 쉼박물관은 박 여사의 오랜 수집품들 중에서 상례와 제례에 관련된 것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파리에서 유리공예를 하고 있는 딸의 응원과 후원이 박물관을 설립하는 데 큰 용기가 되어 주었어요. 이 쉼박물관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드리려는 의도에서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안방의 상여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완전하게 꾸며져서 넓은 실내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상여에 발길을 멈췄다. 모두가 알다시피 상여는 전통 장례에서 망자의 운구에 쓰이던 가장 중요한 물건. 집에서 장지까지 마지막 가는 길을 모셨던, 망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승에서의 최후의 집인 셈이다. 이 상여에는 우리 선조들의 죽음에 관한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상여에 부착해 놓은 많은 조형물들은 망자가 저 세상에 가서도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산 자들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 부착물들에는 시대 현실과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조형물들도 많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 장례 문화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유교의 영향 아래 있다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전통 민간신앙도 분명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내세에 관한 생각입니다. 상여에 부착하는 조형물들을 보면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우리의 전통 설화나 용과 닭, 봉황 등 하늘로 오르는 날개 달린 것들에 부여하는 부활과 영생에 관한 기원들이 참 많습니다.”
이 상여가 놓여 있는 장소는 남편 생시에 두 분이 함께 쓰던 안방이라 한다. 안방에 상여라니! 섬뜩한 느낌이 들 것도 같은데 실제로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죽음만 따로 떼어놓고 보았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죽음도 양태만 바뀐 삶의 영속이라고 믿은 우리 조상들의 죽음에 관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상여를 바라보면 오히려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방 밖에 놓여 있는 ‘요여’는 장지로 운구할 때 상여 앞에서 망자의 혼백을 모시고 가던 작은 가마. 이 밖에도 박물관 1층에는 장례식에 대한 조선시대의 책자들, 죽음을 알리던 부고장 등 정통 상례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식당에는 놋쇠, 자기 등으로 제작된 각종 제기(祭器)들이 있다.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새들이 있다. 닭, 봉황을 비롯한 각종 새의 목조각들이 눈높이의 허공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망자를 하늘나라로 이끌어 주는 길안내의 역할을 새들이 하고 있는 것일까. 1층보다 2층은 하늘에 좀 더 가깝다.
아쉬움과 바람
따스한 유자차를 마시며 박 여사가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신다.
박기옥 여사
“작년에 두 분 전직 대통령의 국장(國葬)이 있었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쉽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때 한 프랑스 기자가 한국은 전통이 깊은 나라이니 장례문화도 특별할 거라 생각해 장례식을 보았던 적이 있었대요. 그런데 대통령의 장례식을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운구차에 국화 6만 송이를 씌웠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기자가 크게 실망했다고 해요. 시대 상황에 따라 문화가 변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외국의 귀빈들도 많이 참석하는 국장이라면 최소한 우리 전통 제례 문화의 상징을 보여주었어야지요. 한국적인 것 말입니다. 상여에 부착하는 꽃, 인물, 새, 도깨비 등으로 6만 송이의 국화를 대신했으면 어땠을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변화를 우리 것을 없애고 정리해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이건 아닌데…. 문화는 문명과 분명히 다르지 않은가. 75세의 박 여사는 국장 유감과 안타까움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말씀하셨다.
“저는 지금도 숫자보다 도깨비와 놀기를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75세가 아니라 75년 생으로 세상을 산다고 남들이 그래요. 저는 이 박물관을 외국인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어요. 그 사람들에게 한국적인 삶과 죽음의 모습과 전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영원한 소녀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박 여사의 쉼박물관은 여사의 소중한 삶의 장소이기도 하고, 일생의 신념을 실천해 오고 있는 보람의 장소이기도 하다. 죽음을 보여주지만 죽음마저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곳이 거기다.
글_ 최준 기획위원·사진_임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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