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村)스러운 이야기⑨] 작고 하찮은 풀이 크게 느껴질 때

[촌(村)스러운 이야기⑨] 작고 하찮은 풀이 크게 느껴질 때

입력 2010-10-03 00:00
수정 2010-10-03 12:0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영원했으면 좋을 것들도 많지만 영원하지 않아서 다행인 것도 참 많습니다. 지금의 무더위와 습기, 무성한 풀들과 벌레들의 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이제 곧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식물들이 열매를 맺는 결실의 계절이 다가올 것입니다. 여름 내내 몸집을 키우기 위해 영양분을 사용했던 식물들은 이제는 열매를 맺기 위해 영양분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제는 그동안 키워낸 몸에 가능하면 많은 씨앗을 맺히게 하는 왕성한 번식이 목표입니다.

이미지 확대
그러다 어느 날 비로소 자신의 몸뚱이에서 작은 씨앗 하나라도 나온다면 식물들은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곧 날씨가 추워질 테니 씨앗을 영글려야만 하니까요. 특히 일년생 풀은 거의 필사적입니다. 올해 결실을 못 보면 다음 생이란 없는 것이니까요. 차라리 싹을 피우지 않았다면 씨앗인 채로 세월을 기다리면 되지만 이미 이 세상에 난 생명은 더 이상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때 저는 엄청나게 불어난 물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큰물은 썰물처럼 밀려와 모든 것을 썰고 가버렸습니다. 살림살이며 농작물은 물론 하다못해 나무를 비롯해서 풀 한 포기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디서 그 많은 잔모래를 몰고 왔는지 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모래사막이 펼쳐졌습니다. 맞습니다. 꼭 사막 풍경이었습니다. 온 세상은 개흙투성이 사막으로 변했는데 조금 세월이 지나자 세상에! 그 많은 풀씨는 또 어디서 왔는지. 며칠 지나자 그것도 땅이라고 작고 여린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여기저기 고개를 내밉니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겨우 뿌리를 내린 땅은 척박한데, 계절은 이미 결실의 계절인 것입니다. 이놈들이 급했습니다. 겨우겨우 몸을 조금 키우더니 곧바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꼭 얼굴만 큰 이상한 가분수 같았으나 저는 그 작은 생명들 앞에 앉아서 “선생님” 했습니다. 그 하찮은 잡풀이 그때는 큰 스승으로 보였습니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열매를 맺고 번식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완성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풀들은 너무나 늦게 태어난 탓에 몸을 키울 시간도 몸을 단장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나비가 한 마리라도 더 있을 때, 벌이 조금이라도 꽃을 필요로 할 때 작고 부실하더라도 번식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
자연입니다. 누구도 탓하지 않고 절망도 이겨내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그 이름 모를 작고 하찮은 풀이 참으로 크게 보였습니다. 그때 참 허망하고 쓸쓸한 날들이었는데 그 이름 모를 풀들이 내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날씨는 매일 조금씩 서늘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낮의 길이도 점점 짧아져서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서 별로 할 일도 없어진 저는 그 작은 풀들의 마음이라도 된 듯 덩달아 조급하고 걱정되고 궁금해 매일 그 작은 풀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풀이 열심히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하찮게 생각하는 그 작은 풀들이 나름의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행하는 것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무더위도 지나고 백중이 다가오면 성질 급한 나뭇잎은 벌써 자신의 몸에서 물기를 빼고 바람에 실려 공중을 떠다니다가 땅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모험심 뛰어난 또 다른 낙엽은 좀 더 멀리 날아가서 다른 세상을 만나기도 하겠죠.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식물들은 더 열심히 꽃을 피우고 빨리 열매를 맺으려 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할 수 있는 한 많이, 그 와중에 나의 작물 또한 결실을 합니다. 그동안 작은 농사일을 하면서 잘 몰라서 실패한 작물의 대표 주자가 바로 고추입니다. 고추는 워낙 병이 심해서 농약을 치지 않으면 대부분 탄저병인가에 걸리고 만다고 합니다. 나도 십수 년 고추를 가꾸며 병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름 터득한 방법이 있어서 병에 걸리지 않고 서리가 내려서 더 이상 고추를 딸 수 없을 때까지 풋고추를 따먹기도 하고 익은 고추를 말리기도 합니다.

내가 터득한 방법은 별로 거창할 것도 없이 땅 기운과 그 땅에 심겨지는 작물의 기운이 맞아야 한다는 것인데, 내 땅은 비료나 거름을 하지 않아서 땅 기운은 좋지만 밭작물을 키우는 밭으로는 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땅에는 기운이 왕성한 모종을 심으면 되려 서로 조화가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엄청 싱싱하고 기운이 좋아 보이는 모종을 사다 심었다가 실패를 거듭 한 후 어느 해부터 시장에서 가장 비리비리한 모종을 사다 심었습니다.

이미지 확대
그것들을 심어놓고는 저것들이 살 수 있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한동안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아서 그런 대로 잘 자라줍니다. 가만히 있었던 시간은 아마 땅과 타협을 하는 시간이었지 싶습니다.

그렇게 겨우 자란 고추나무는 건강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느라고 나름 힘을 키운 것입니다. 웬만한 벌레나 병은 이길 수 있는 면역이 생긴 것입니다. 남의 밭 고추나무가 병으로 고생할 때도 끊임없이 작은 꽃을 피우고 작은 열매를 맺습니다. 기온이 떨어질수록 꽃도 더 작아지고 열매도 더 작아지기는 하지만 더 이상 못하게 될 때까지 병 걸리지 않고 작지만 튼튼하게 살아냅니다. 그러니 그 작은 보물이 먹기 아까운 정도로 예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고추밭 옆에 김장용 배추와 무, 갓등이 심겨질 테고 그 곁에서 나의 영롱한 보물은 좀 더 두터워진 햇볕에 익어갈 것입니다.

글_ 남난희 《낮은 산이 낫다》 저자·사진_ 주영태 농부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