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배우세상’이 단골메뉴인 <칼맨>(김태수 작, 강영걸 연출)을 2009년 10월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올려놓고 있다. 단골메뉴라 한 것은 이 극단이 이 작품을 2001년, 2005년에도 윤우영 연출로 공연한 바 있기 때문이다.
작가 김태수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이른바 서민극을 개척해 왔다. 작가 스스로는 서민극을 “우리 부모 세대라면 거의 겪어왔거나, 혹은 지금도 겪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통해 우리 가슴에 삶의 원시처럼 숨어 있던 가난과 극복, 온정, 나눔, 사랑을 우려내고 또 그걸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심어 주려 하는 것으로 자리 매김한다. 거기에서 일상과, 페이소스와, 그리움과, 눈 끝에 걸린 만큼의 조그만 눈물과, 작은 아름다움들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이에 공감하여 다음의 세 가지로 서민극의 세계를 파악했노라고 쓴 바 있다.
<칼맨>은 칼을 소재로 하여 인간생활의 면면을 드러내면서 같은 기대에 잘 부응하는 작품이다. 서울의 변두리 신흥개발구역에 있는 간이 푸줏간집 주인과 세든 사람들, 그리고 양념 삼아 등장하는 동네사람들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친구로부터 배반당하거나, 고아로 자라면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여동생을 유린당하거나,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 채 생계를 위해 나가는 밤무대의 깡패들로부터 위협당하는 등 대도시의 뒷골목 인생들이 칼을 매개로 비쳐진다. 푸줏간 노인 역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면서 드디어 보검을 벼러낸 것으로 소문이 나 있지만, 강간으로 인해 자폐증에 빠져 버린 딸로 인해 옳게 살고자 하는 결심이 흔들리곤 한다. 건달 칼잡이지만 음악성을 갖춘 청년과 역시 칼을 품고 다니지만 소심한 떠돌이 장사꾼 청년의 등장, 그리고 가수가 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여인과 자폐증에 걸린 푸줏간집 딸, 거기에 칼잡이 청년과 가수가 되려는 여인을 쫓는 칼잡이 폭력배가 등장한다. 드디어 가수의 꿈을 실현시키는 여인과 뛰어난 인형목각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폐증에 탈출하는 푸줏간집 딸로 막이 내린다. 모두가 칼과 연관되도록 짜인 구도는 작위적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칫 어두워질 수도 있는 제재를 재치 있게 다루어 관객들은 시종 폭소 가운데 세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장자의 포정(包丁)이야기와 선불교적 화두마저 무리 없이 배합한 작가의 극작술은 선(禪)을 노골적으로 다룬 같은 작가의 <나비는 천 년을 꿈 꾼다>보다 오히려 설득력이 높다.
초연 당시 나는 언어에 능한 작가와 활력 있는 무대를 솜씨 있게 만들어낸 연출자, 그리고 안정된 중에 개성을 살려낸 연기자들의 앙상블로 인해 오랜만에 제대로 된 희극적 비극을 즐길 수 있었다고 썼다. 특히 노인 역을 한 조상건의 연기가 오랜 연기생활에도 불구하고 크게 조명 받지 못했던 불운을 단번에 씻어냈다고 썼다. 이번 연출을 맡은 강영걸은 좁은 무대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적 요소를 가미하여 볼거리를 늘리고 극 진행에 속도를 가했다. 노인 역은 극단 대표인 김갑수가 맡아 조상건의 연기보다는 가벼우면서도 인간미가 더 풍기도록 살려낸다. 경험이 많지 않은 다른 연기자들과 호흡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들을 배려하는 노력이 끈끈하다.
김갑수는 1957년 4월생으로 하남 정윤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7년에 극단 현대극장에 제1기 연구생으로 들어서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이 극단에서 <멀고 긴 터널> <결혼중매>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님의 침묵> <언챙이곡마단> 등에 출연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김상렬 연출작이다. 나로서는 <님의 침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뮤지컬 형식의 연극에서 한용운 역을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연기하던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김갑수는 김상렬이 1988년에 창단한 극단 ‘신시’에 창립단원으로 가담하여 여러 편의 공연에 출연했는데, 나로서는 <애니깽>이 기억에 남는다. 김갑수는 한말에 무능한 제국과 교활한 외국세력의 농간으로 남미로 실려가 선인장 농장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탈출하여 온갖 고초 끝에 귀국하여 임금께 호소하려 했으나, 나라가 이미 망해버려 망연자실하는 민초들을 대표하는 역할로 심금을 울렸었다.
이와 같은 활약은 극계에서 널리 인정을 받아 1984년에 ‘오영진연극상’, 1991년에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등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1994년에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으로 영화에 데뷔, 이듬해에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한다. 이후 영화와 TV드라마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쳐 인기몰이를 했다.
2010년 3월에, 그는 드라마 4편, 영화 1편을 동시에 찍으며 겹치기 출연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추노> <제중원> <거상 김만덕> 등 3편의 사극에 출연한 김갑수는
<추노> 후속으로 방송된 KBS 수목극 <신데렐라 언니>와 영화 <혈투>에도 출연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수염을 달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 그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겹치기 출연이 돼 시청자에게 죄송하다”면서 “편성 지연과 PD와의 인연 등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존재감 없는 역할은 잘 안 한다”고 나름대로 연기자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연극을 떠난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김상렬의 동의 아래 그는 극단 ‘배우세상’을 창단하고, 1998년 5월에 <좋은 녀석들>을 창단공연으로 무대에 올려놓았다. 김상렬이 그 해 세상을 뜨면서 박명성과 함께 극단 ‘신시’의 공동대표로 예정되었으나, 자신의 극단에 충실하기 위함인지 사퇴하고, 2006년에는 배우세상 소극장을 개설하여 매년 적게는 두 편, 많게는 네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는 극단 창단의 취지를 ‘배우 중심의 연극을 표방하는 단체’로 술회한 바 있다. 이에는 “연극이 배우 중심의 예술임에도 우리의 연극계에서 배우는 작가, 연출자,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적 역할을 맡아왔다”는 자의식이 작동한다. 즉 배우들이 ‘연극 창조에 적극 동참하여 등장인물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능동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결의가 숨어 있다. 평소에 김갑수는 “저 바깥을 보더라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찾고 세밀하게 관찰하라는 뜻으로 배우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와 맞닿는 부분이다. 이에 “연극의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중견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극단을 창단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타당한 주장인데, 세월이 가다보면 자칫 그가 운영하는 액팅 스튜디오 출신의 신인들과 대표가 꾸며가는 무대로 시종하지 않을까 저어되는 심정이 없지 않다.
그와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 끝에 위근우 기자는 그를 ‘직장인처럼 활동하는 예술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연기에 대한 정답을 내놓아서라기보다는 답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놓지 않기 때문에 학구적이라는 표현을 달리 말한 것이다.
그에게는 ‘연기의 본좌’라는 뜻에서 ‘김본좌’라는 별명이 붙었다는데, ”연기란 그 캐릭터가 살아온 삶, 그동안 생각한 것들을 아우르는 작업이기 때문에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그의 경험이 후진들에게도 전수될 것을 기대한다. 최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젊은 시절 성형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 깊은 주름 덕에 그는 개성 있는 연기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농담도 가능하다. 앞으로도 그가 오래도록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줄 것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소탈하고 소주잔이나 즐길 듯하나, 그는 실제로는 와인과 샌드위치, 그리고 커피를 즐기는 한편, 해외 브랜드의 바이크를 2대나 갖고 즐기는 마니아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리는 감각파로서, 트위터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스타이기도 하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도 팔로어가 3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가 이토록 젊음을 구가하는 배경에는 같이 연기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극단살림까지 포함하여 내조에 전념하는 부인 현금숙이 존재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참고로 <칼맨> 공연은 월, 화, 수요일에는 공연이 없고, 김갑수는 대체로 토요일에만 출연하고, 나머지 날엔 국립극단 단원 출신 김재건이 주인공 역을 맡는다.
글_ 김문환 연극평론가·사진제공_ 배우세상
작가 김태수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이른바 서민극을 개척해 왔다. 작가 스스로는 서민극을 “우리 부모 세대라면 거의 겪어왔거나, 혹은 지금도 겪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통해 우리 가슴에 삶의 원시처럼 숨어 있던 가난과 극복, 온정, 나눔, 사랑을 우려내고 또 그걸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심어 주려 하는 것으로 자리 매김한다. 거기에서 일상과, 페이소스와, 그리움과, 눈 끝에 걸린 만큼의 조그만 눈물과, 작은 아름다움들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이에 공감하여 다음의 세 가지로 서민극의 세계를 파악했노라고 쓴 바 있다.
<칼맨>은 칼을 소재로 하여 인간생활의 면면을 드러내면서 같은 기대에 잘 부응하는 작품이다. 서울의 변두리 신흥개발구역에 있는 간이 푸줏간집 주인과 세든 사람들, 그리고 양념 삼아 등장하는 동네사람들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친구로부터 배반당하거나, 고아로 자라면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여동생을 유린당하거나,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 채 생계를 위해 나가는 밤무대의 깡패들로부터 위협당하는 등 대도시의 뒷골목 인생들이 칼을 매개로 비쳐진다. 푸줏간 노인 역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면서 드디어 보검을 벼러낸 것으로 소문이 나 있지만, 강간으로 인해 자폐증에 빠져 버린 딸로 인해 옳게 살고자 하는 결심이 흔들리곤 한다. 건달 칼잡이지만 음악성을 갖춘 청년과 역시 칼을 품고 다니지만 소심한 떠돌이 장사꾼 청년의 등장, 그리고 가수가 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여인과 자폐증에 걸린 푸줏간집 딸, 거기에 칼잡이 청년과 가수가 되려는 여인을 쫓는 칼잡이 폭력배가 등장한다. 드디어 가수의 꿈을 실현시키는 여인과 뛰어난 인형목각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폐증에 탈출하는 푸줏간집 딸로 막이 내린다. 모두가 칼과 연관되도록 짜인 구도는 작위적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칫 어두워질 수도 있는 제재를 재치 있게 다루어 관객들은 시종 폭소 가운데 세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장자의 포정(包丁)이야기와 선불교적 화두마저 무리 없이 배합한 작가의 극작술은 선(禪)을 노골적으로 다룬 같은 작가의 <나비는 천 년을 꿈 꾼다>보다 오히려 설득력이 높다.
초연 당시 나는 언어에 능한 작가와 활력 있는 무대를 솜씨 있게 만들어낸 연출자, 그리고 안정된 중에 개성을 살려낸 연기자들의 앙상블로 인해 오랜만에 제대로 된 희극적 비극을 즐길 수 있었다고 썼다. 특히 노인 역을 한 조상건의 연기가 오랜 연기생활에도 불구하고 크게 조명 받지 못했던 불운을 단번에 씻어냈다고 썼다. 이번 연출을 맡은 강영걸은 좁은 무대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적 요소를 가미하여 볼거리를 늘리고 극 진행에 속도를 가했다. 노인 역은 극단 대표인 김갑수가 맡아 조상건의 연기보다는 가벼우면서도 인간미가 더 풍기도록 살려낸다. 경험이 많지 않은 다른 연기자들과 호흡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들을 배려하는 노력이 끈끈하다.
김갑수는 1957년 4월생으로 하남 정윤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7년에 극단 현대극장에 제1기 연구생으로 들어서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이 극단에서 <멀고 긴 터널> <결혼중매>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님의 침묵> <언챙이곡마단> 등에 출연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김상렬 연출작이다. 나로서는 <님의 침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뮤지컬 형식의 연극에서 한용운 역을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연기하던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김갑수는 김상렬이 1988년에 창단한 극단 ‘신시’에 창립단원으로 가담하여 여러 편의 공연에 출연했는데, 나로서는 <애니깽>이 기억에 남는다. 김갑수는 한말에 무능한 제국과 교활한 외국세력의 농간으로 남미로 실려가 선인장 농장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탈출하여 온갖 고초 끝에 귀국하여 임금께 호소하려 했으나, 나라가 이미 망해버려 망연자실하는 민초들을 대표하는 역할로 심금을 울렸었다.
이와 같은 활약은 극계에서 널리 인정을 받아 1984년에 ‘오영진연극상’, 1991년에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등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1994년에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으로 영화에 데뷔, 이듬해에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한다. 이후 영화와 TV드라마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쳐 인기몰이를 했다.
2010년 3월에, 그는 드라마 4편, 영화 1편을 동시에 찍으며 겹치기 출연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추노> <제중원> <거상 김만덕> 등 3편의 사극에 출연한 김갑수는
<추노> 후속으로 방송된 KBS 수목극 <신데렐라 언니>와 영화 <혈투>에도 출연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수염을 달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 그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겹치기 출연이 돼 시청자에게 죄송하다”면서 “편성 지연과 PD와의 인연 등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존재감 없는 역할은 잘 안 한다”고 나름대로 연기자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연극을 떠난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김상렬의 동의 아래 그는 극단 ‘배우세상’을 창단하고, 1998년 5월에 <좋은 녀석들>을 창단공연으로 무대에 올려놓았다. 김상렬이 그 해 세상을 뜨면서 박명성과 함께 극단 ‘신시’의 공동대표로 예정되었으나, 자신의 극단에 충실하기 위함인지 사퇴하고, 2006년에는 배우세상 소극장을 개설하여 매년 적게는 두 편, 많게는 네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는 극단 창단의 취지를 ‘배우 중심의 연극을 표방하는 단체’로 술회한 바 있다. 이에는 “연극이 배우 중심의 예술임에도 우리의 연극계에서 배우는 작가, 연출자,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적 역할을 맡아왔다”는 자의식이 작동한다. 즉 배우들이 ‘연극 창조에 적극 동참하여 등장인물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능동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결의가 숨어 있다. 평소에 김갑수는 “저 바깥을 보더라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찾고 세밀하게 관찰하라는 뜻으로 배우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와 맞닿는 부분이다. 이에 “연극의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중견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극단을 창단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타당한 주장인데, 세월이 가다보면 자칫 그가 운영하는 액팅 스튜디오 출신의 신인들과 대표가 꾸며가는 무대로 시종하지 않을까 저어되는 심정이 없지 않다.
그와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 끝에 위근우 기자는 그를 ‘직장인처럼 활동하는 예술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연기에 대한 정답을 내놓아서라기보다는 답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놓지 않기 때문에 학구적이라는 표현을 달리 말한 것이다.
그에게는 ‘연기의 본좌’라는 뜻에서 ‘김본좌’라는 별명이 붙었다는데, ”연기란 그 캐릭터가 살아온 삶, 그동안 생각한 것들을 아우르는 작업이기 때문에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그의 경험이 후진들에게도 전수될 것을 기대한다. 최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젊은 시절 성형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 깊은 주름 덕에 그는 개성 있는 연기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농담도 가능하다. 앞으로도 그가 오래도록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줄 것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소탈하고 소주잔이나 즐길 듯하나, 그는 실제로는 와인과 샌드위치, 그리고 커피를 즐기는 한편, 해외 브랜드의 바이크를 2대나 갖고 즐기는 마니아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리는 감각파로서, 트위터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스타이기도 하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도 팔로어가 3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가 이토록 젊음을 구가하는 배경에는 같이 연기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극단살림까지 포함하여 내조에 전념하는 부인 현금숙이 존재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참고로 <칼맨> 공연은 월, 화, 수요일에는 공연이 없고, 김갑수는 대체로 토요일에만 출연하고, 나머지 날엔 국립극단 단원 출신 김재건이 주인공 역을 맡는다.
글_ 김문환 연극평론가·사진제공_ 배우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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