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입력 2011-01-30 00:00
수정 2011-01-3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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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모순에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 세계문학전집에도 반드시 등장하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명작을 남긴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또한 사상가로서도 많은 저작을 남겼다. 원래 백작 가문의 귀족 출신이었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청빈한 농부의 삶을 살고자 했다. 모순에 가득 찬 톨스토이의 인생은 말년에 시도되었던 그의 극단적 실험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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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이중적 자아는 감각적이고 향락적이며 개인주의적인 것과 청교도적이며 도덕주의자로서의 간극 사이에서 발생한다. 제정러시아에서 인류 최초로 사회주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있던 20세기 전후 격동의 러시아를 무대로 인간 심리의 탁월한 분석을 토대로 개인과 역사 사이의 모순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인간의 허위의식과 기만, 거짓 등의 본능적 모습들을 뛰어나게 묘사해서 예술적 성취를 거두었다.

톨스토이 자신도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극도로 혼돈된 삶을 살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백작 가문의 아들이었고 청년시절에는 성적 본능을 충실히 따라다니는 향락주의적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순되게 금욕주의자의 삶을 열망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강렬한 성적 본능과 욕망을 갖고 있는데 모순적인 것은,그런 욕망이 강해질수록 청교도적이며 금욕주의적 삶의 태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자기완성과 자기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톨스토이를 위대한 작가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었다. 원제가 <The Last Station>인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때 톨스토이는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까지 포함된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유언장을 작성하였다. 영화는 바로 그 부분을 모티프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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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말년에 공동체적 삶을 지양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해법을 내려주는 인생의 교사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모순에 가득 찬 삶을 벗어던지고 청교도적 삶을 살 수 있는 집단의 삶을 꿈꾸었다. 영화는 톨스토이주의에 심취한 문학 청년 발렌틴 불가코프(제임스 맥어보이)가 톨스토이의 수제자이자 톨스토이보다 더 톨스토이주의를 신천한 인물로 평가받는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폴 지아매티)에 의해 톨스토이의 개인 비서로 고용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톨스토이의 집에 도착한 발렌틴을 눈여겨보는 두 여자가 있다. 한 사람은 역시 톨스토이주의에 심취해 이곳에 와서 일하는 마샤(케리 컨던)였고 또 한 사람은 평생을 톨스토이와 함께한 그의 부인 소피아(헬렌 미렌)였다. 마샤는 적극적으로 발렌틴에게 다가간다. 발렌틴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곧 그들의 사랑은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청교도적 삶을 지양하는 톨스토이 집안에서 개인적인 사랑놀음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게 되면서 갈등하게 된다.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수제자인 체르트코프가 톨스토이를 충동질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기록해서 자신에게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또 체르트코프는 소피아가 톨스토이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말한다. 발렌틴은 소피아와 체르트코프 사이에 낀 중간적 입장에 처하게 된다. 실제로 이 영화는 미국의 전기작가 제이 파라니가 톨스토이의 마지막 개인비서였던 발렌틴의 일기를 나폴리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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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톨스토이(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의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다. 평생 톨스토이를 내조해 온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헬렌 미렌)는 가족을 우선 생각하지 않는 톨스토이의 이러한 선언에 배신감을 느끼고 격렬하게 반발한다.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를 악처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은 소피아의 이러한 행동을 견디지 못하고 톨스토이가 집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마지막 여행 중에 사망했기 때문에 더욱 과장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영화는 톨스토이의 비서인 발렌틴의 시선으로 모순에 가득 찬 톨스토이 말년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톨스토이의 제자들과 아내 사이에서 발렌틴은 큰 혼란을 겪는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힘들어 하는 톨스토이와 평생 톨스토이가 작품을 집필할 때나 때로는 방탕했던 그의 삶을 견디며 내조해 온 아내 소피아, 톨스토이의 수제자 체르트코프 사이에서 발렌틴은 힘들어 한다. 영화는 발렌틴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피아와 톨스토이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외적으로 드러난 행동들과 달리 그들 사이에는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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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본질적으로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갈등을 다룬 가정극에 속한다. 막내딸 사샤도 아버지 톨스토이를 지지하고 수제자 체르트코프도 톨스토이가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유언장에 서명함으로써 톨스토이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위대하게 죽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다만 부인 소피아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말하는 악처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다. 그들의 말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발렌틴의 시선에는 소피아가 늘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목말라하는 여인으로 보인다.

톨스토이는 삶의 마지막을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다며 아내 소피아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집을 나간다. 그의 곁에는 수제자인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 막내딸 사샤, 주치의 마코비츠키 등이 있다. 그들은 유언장에 서명한 톨스토이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 소피아가 톨스토이에게 다가가 유언장을 변경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소피아의 접근을 차단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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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은 실제로 톨스토이가 마지막 기차 여행 중 병이 위독해져서 내렸던 러시아 남부 소도시 아스타포보에서 촬영되었다. 발렌틴은 몰래 소피아에게 톨스토이의 행선지를 알린다. 하지만 톨스토이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소피아의 접근을 방해한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이념에 동조하지 않고 배신감을 느꼈지만 열정적으로 평생 그를 사랑했던 소피아 역의 헬렌 미렌의 연기가 압권이다.

자칫 딱딱해지고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내러티브는 헬렌 미렌에 의해 역동적 생기가 일어난다. 이미 칸느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그녀는 이 영화로 로마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령 역으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톨스토이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연기도 좋다. 다만 톨스토이의 이념적 갈등이 더 섬세하게 묘사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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