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골목 여행]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다

[구석구석 골목 여행]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다

입력 2012-08-19 00:00
수정 2012-08-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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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성내동 구제 골목~진골목

골목은 낮다. 꼿꼿이 걸으면 보이지 않는다. 높은 빌딩과 현란한 간판에 가리어졌다. 사는 게 힘들어 다리가 풀려버린 어느 날 주저앉아 당신은, 볼 수 있다.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지는 어느 날 고개를 숙이면 당신은, 갈 수 있다. 골목은 그렇게 당신에게로 온다. 항상 당신의 곁에 있지만 당신은 알지 못했던 골목길을 걸었다. 대구의 가장 번화한 곳, 중구에 숨겨진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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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 골목>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행복

심해(深海)에 뚝 떨어졌다. 막막하고 신비롭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 심해의 여행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숨을 참고 눈을 떠 바다의 힘에 맞서야 한다. 이 세계도 꼭 그랬다. 구제 골목을 여행하는 자에게는 취하고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귀찮음은 이기고 촉을 세워야 한다. 가늠 안 되는 깊이와 알 수 없는 높이로 무장한 ‘옷의 세계’는 심해를 방불케 했다. 한번 발 들였다가 문 닫을 때까지 머물고 만, 구제 골목(대구 중구 성내1동)이다.

구제 골목은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대구에 자리 잡았다.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옷을 유통시키던 부산 보따리장수가 대구로 넘어오면서부터다. 구제 골목으로 일컬어지는 지역은 롯데 ‘영플라자’와 대구의 백화점 ‘동아백화점’ 사이와 교동시장 주변이다. 최첨단 쇼핑지와 구제 골목, 조합이 재밌다. 큰 건물이 골목의 원주인을 막아선 모습이다.

구제 가게에서 필요한 건 돈보다 시간 쪽이다. 들인 시간과 옷의 품질은 비례한다. 골목을 따라 이어진 상점에 차례로 들어갔다. 대체로 이곳 구제 옷가게는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사람 키만 한 비닐봉투에 옷을 쌓아놓는 ‘방치형’과 옷걸이에 정돈하는 ‘돌봄형’이다. ‘돌봄형 가게’의 경우 주인이 그만큼 옷에 대해 잘 안다는 뜻, 추천과 상담을 받는 게 유리하다. 반면 ‘방치형 가게’는 주인조차 어떤 옷이 있는지 모른다. 풀썩이는 옷 먼지가 코를 괴롭히지만 그 안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뿌듯함이야말로 구제 옷가게를 가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현주네’ ‘동하네’가 대표적인 방치형 가게라면 ‘보물창고’ ‘보물섬’ ‘간지나라’는 돌봄형 가게다. 가격은 여름옷 기준으로 1천 원~1만 5천 원을 넘지 않지만 그래도 인건비 때문인지 방치형 가게 쪽이 좀 더 저렴하다.

마음에 드는 옷이 저렴해도, 신중을 기하라고 ‘동하네’ 대표 전미자 씨는 조언한다. “아무리 예쁜 옷도 입으면 다르데이. 후회 안 하려면 다 입어봐.” 그래서인지 옷가게 안에는 입고 벗는 ‘아지매’들이 많다. 평가는 주인보다 손님끼리 주고받는 분위기. “그건 파이다(별로다).” “작은데?” “낫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거침없다.

구제 골목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한 골목은 액세서리, 한 골목은 수선가게, 한 골목은 가방·구두 가게 있던 한때는 가고 지금 옷가게를 뺀 가게들은 비어 있다. 그런데 그것대로 볼만하다. 빈 건물을 채우는 사람 냄새가 좋다. 골목 여행이란 원래 지나간 기억 되뇌며 ‘오래된 미래’를 그리는 일 아니던가.



<진골목> ‘징하게’ 길기도 길어, 인생 마냥

채 100미터 남짓한 길 이름이 ‘진골목(대구 중구 성내2동)’이다. ‘질다’는 ‘길다’의 대구 사투리, 이 짧은 골목 이름이 웬일인지 긴 골목이라는 뜻이다. 진골목은 1900년대 초 달성 서씨가 살던 부자촌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 형제를 비롯해 섬유회사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정치인 신도환, 대구 소주의 대명사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 등이 이곳에 살았다. 하지만 광복 이후 부자들이 떠난 진골목은 고급술집 거리로 바뀌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지금처럼 한옥의 따듯한 정서가 스며든 골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골목을 따라 걸으면 ‘정소아과의원’ 간판을 단 2층 건물이 보인다. 서병국의 자택이었고,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자,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1947년 정필수 원장이 이곳에 소아과를 개원한 이후 정소아과의원은 진골목의 상징이 됐지만, 고령인 정 원장은 2010년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 문을 닫았다.

1970년대 소방도로 개통 전까지, 진골목은 진짜 길었다. 길은 그때 반 토막 났지만 길허리 에 있던 ‘미도다방’에서는 여전히 차를 판다. 문인과 예술가의 아지트로, 시낭송회 공간으로, 사랑방으로도 통한다. 故 전상열 시인은 동명의 시도 발표했다. ‘미도다방에 가면 /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 꽃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중략).’ 스물일곱에 미도다방의 주인이 된 정인숙 여사는, 미도봉사회를 만들어 독거노인을 돕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주 메뉴는 약차. 단골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예나 지금이나 2천 원만 받는다. 함께 나오는 생강은 설탕에 꾹 찍어 먹으면 과자처럼 맛있다.

미도다방을 지나면 평양에서 구운 벽돌과 금강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지었다는 화교소학교 건물까지 걸을 수 있다. 진골목 초입에는 ‘염매시장’이 보인다. ‘염가판매’의 줄임말이 ‘염매’인데, 가수 현미도 한국전쟁 때 대구로 피란 와 이곳에서 떡 장사를 했단다. 짧지만, 긴 진골목을 빠져나왔다. 걸었던 길은 인생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지극히 짧지만 ‘징하게’ 긴 우리네 삶은, 진골목과 닮았다.

글· 사진 송은하 기자

골목 여행의 메카, 대구

대구는 가는 곳마다 골목이다. 해방 이후 형성된 상권과 주거지 중 재개발되지 않은 구역을 시(市) 차원에서 정비한 까닭이다. 골목투어도 운영한다. 2,4주차 토요일, 3주차 목요일과 금요일에 이용할 수 있다. 예약과 안내는 대구 중구 홈페이지(gu.jung.daegu.kr)를 참고한다. 이동할 때는 지하철을 타보자. 동전처럼 생긴 지하철 이용권이 귀엽다. 요금은 어딜 가든 1천 원. 여행 중 ‘우동+불고기’는 꼭 먹어볼 음식이다. 연탄불로 구운 불고기는 한 접시 5천 원, 우동은 한 그릇이 3천 원이다. 서성로 길가 야외 포장마차에서 판다. 이곳 역시 낮은 눈과 마음으로 찾으면 금방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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