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통 넘게 손편지 쓴 기네스북의 70대 정종련씨

3만통 넘게 손편지 쓴 기네스북의 70대 정종련씨

입력 2015-09-24 09:04
수정 2015-09-2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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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평균 1.8통 50년간…연말께 쓴 편지 책으로 출간 계획

50년간 무려 3만2천여통의 손 편지를 써 각박한 세상에 감동을 전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정종련(75)씨. 팔순을 바라보는 정씨는 ‘편지를 제일 많이 보낸 사람’으로 기네스북이 이미 공인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씨가 1965년 2월 7일부터 지난 23일까지 쓴 손 편지는 3만2천645통. 하루 평균 1.8통, 한 달 평균 54통, 연평균 652통에 달한다.

그가 편지를 보내며 수취인, 일련번호, 인적사항, 편지 내용 등을 일일이 기록한 편지발송대장만 17권에 달한다. 이 대장은 충남 천안의 우정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편지를 보낸 곳은 일반 지인이나 단체, 부모 형제, 일가친척은 물론 정부와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정씨가 이처럼 손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1983년부터 16년간 법무부 등에 편지를 보내 무호적자 지원을 위한 제도 마련을 청원, 무려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호적을 찾아줬다.

행정자치부가 1999년 1∼6월 ‘무호적자 일제 조사 및 취적 지원’에 나선 데도 정씨의 공이 컸고 이때만 6천357명이 호적을 찾았다. 이 중 2천880명은 2000년 총선 때 난생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정씨는 이후에도 ‘삼성법률봉사단’ 등에서 시민활동가로 일하며 호적을 찾아주는 일을 계속했다. 그는 소외계층 인권보호에 앞장선 공로로 2005년 4월 ‘법의 날’에 비법조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정씨의 손 편지는 다른 봉사로도 이어졌다.

1993년 노점상을 하며 백령도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글을 몰라 애만 태우던 할머니의 사정을 전해듣고 3년간 102통의 편지를 대필해줬다. 이 할머니의 아들은 제대 후 정씨를 찾아와 ‘덕분에 3년간 군 복무를 무사히 끝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정씨는 또 1948년 여순사건 때 경찰인 아버지를 잃었지만 사망한 날을 몰라 제사도 못 지내던 유가족을 위해 국방부, 경찰청 등에 편지를 보내 사망일자와 장소 등을 확인해주기도 했고 2003년 여수대학(현 전남대 여수캠퍼스)이 전신인 여수수산학교 중퇴자로, 여순사건 희생자 2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한 것도 그의 손편지 청원 때문이었다.

2000년에는 제주도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의 표지석 한자가 ‘天地淵’과 ‘天池淵’으로 혼용돼 있던 것을 ‘땅 지(地)’로 통일한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정씨가 손 편지를 쓰는 데는 몇 가지 수칙이 있다. 만년필·검정 잉크·손으로 직접 만든 편지지와 봉투 사용, 발송대장에 번호·수취인 인적사항·편지 내용 기록, 편지봉투에 일련번호 기입 등이다.

정씨는 “어린 시절 한학자인 선친에게 손 편지의 장점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며 “손 편지는 통신수단이 발달한 요즘에도 그리움과 감동을 줄 수 있고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마음이 맑아진다”고 손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어느덧 손 편지 인생이 50년이 됐는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연말께 그동안 쓴 편지를 책으로 묶어 출간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손 편지 책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지 은근히 기대를 모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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