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서 온 16살 연하 새신랑과 신방 3년째… ‘2세 만들기’ 결실 예감
일부일처제,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는 동물 세계에서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면 동물에게 이 밖의 결혼제도가 또 있을까.16세 연상인 암컷 고릴라 ‘고리나’(뒤)가 영국에서 건너온 새 남편 ‘우지지’와 등을 돌린 채 놀이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로랜드고릴라이자 사람으로 치면 50대 중반인 고리나의 대를 잇기 위해 동물원은 실버리본프로젝트를 펼쳤지만 속만 새까맣게 태웠다.
나이가 한참 어린 새 신랑을 맞이한 행운의 주인공 고리나는 1984년 서울대공원 개원과 더불어 국제무역상사를 통해 들어왔다. 2000년 6월부터는 전 남편 고리롱과 부부생활을 하며 2세 출산의 기대 속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1년 2월 고리롱이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독수공방의 설움을 겪었다. 서울동물원은 고리나·고리롱 부부의 2세 출산을 위해 2009년 유인원관 콘크리트 바닥을 천연 잔디로 바꾸고 숲을 조성하는 한편 돌산을 이용한 서식환경을 개선, 창경원 이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신유인원관으로 리모델링을 마쳤다. 늙은 부부의 출산을 위해 이른바 실버리본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방암 켐페인 핑크리본, 전립선암 켐페인인 블루리본에 견줘 노부부의 출산을 기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번식 가능성을 알아보려고 먼저 고리나의 생식 능력을 측정했다. 1년여에 걸쳐 호르몬을 분석해 보니 정상적인 번식 주기가 확인됐다. 이어 고리롱의 생식능력을 점검했다. 국내 최고의 불임전문 병원 비뇨기과 의사를 수소문해 도움을 받았다. 폐쇄회로(CC) TV를 통해 행동을 관찰하고 생식기능 보조제를 먹이면서 가능성을 엿봤다. 사육사들도 ‘고릴라 짝짓기 동영상’까지 보여 주며 온갖 보양식을 제공했다.
고릴라는 세계적 희귀종이어서 도입하려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동물원은 2000년부터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 회원으로 가입해 매년 총회에 참가하고 국제교류를 이어오고 있었다. 2009년 10월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 총회까지 참석해 수컷 고릴라 도입을 놓고 활동을 펼치며 각국 동물원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2010년 6월 고릴라 번식으로 유명한 미국 콜로보스 동물원에서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의 고릴라 종보전 책임자인 네덜란드 알펜홀 동물원장을 소개받았다. 희망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2010년 8월 알펜홀을 초청해 신유인원관의 고릴라 사육환경 및 번식문제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10월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로부터 한국 고릴라 종보존을 위해 수컷 한 마리를 ‘브리딩론’(Breeding Loan)으로 기증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브리딩론이란 동물원 등 각 기관에서 보유한 동물을 임대 형식으로 보내 멸종위기종의 번식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으로 협약을 통해 이뤄진다. 이번 로랜드고릴라의 도입은 영구임대 조건으로, 두 번째 출산 개체는 영국 소유가 된다.
김보숙 서울동물원 기획운영전문관
이토록 어렵게 들여온 우지지와 고리나의 번식을 위해 동물영양, 매뉴얼, 번식, 질병관리, 사육, 전시 등 각 부서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해피 고릴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들의 허니문을 위해 다양한 과일나무까지 심고, 관람객들로부터 은밀한 사생활이 침해받지 않도록 ‘이중 몰래 관람창’을 설치해 사람은 고릴라를 볼 수 있지만 고릴라는 사람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등 신방 꾸미기를 마무리했다. 특히 우지지의 빠른 적응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영국에서 제공하던 고구마, 당근, 배추, 샐러드 등 야채류뿐만 아니라 닭고기, 계란 등 육류품과 유제품, 견과류 등 20여 가지의 영양 식단으로 특별 관리하고 있다.
영국에서 온 멋진 신사 우지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사랑에 빠진 듯하다. 새해가 밝았다. 청마 해에는 말처럼 통통 튀는 귀여운 아기 고릴라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kbs6666@seoul.go.kr
2014-01-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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