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풍자, 아찔한 줄타기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풍자, 아찔한 줄타기

송혜민 기자
송혜민 기자
입력 2017-07-21 17:38
수정 2017-07-2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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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의 힘·영역 어디까지일까

中 검색 금지어 됐다 풀려난 푸
中 검색 금지어 됐다 풀려난 푸
중국에서 때 아닌 ‘곰돌이 푸’ 논란이 일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곰돌이 푸’가 일시적으로 검색 금지어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때 웨이보에서 푸의 중문 이름(小熊維尼)을 검색해 보면 푸의 다양한 사진들은 검색되지만, 푸와 푸의 친구인 티거(호랑이 캐릭터)가 함께 걷는 사진 등 몇몇 사진은 찾을 수가 없었다.

푸와 티거가 나란히 걷는 모습의 그림은 2013년 시진핑 주석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당시 두 사람이 걸어가는 장면과 매우 닮아 화제를 모은 것이다. 푸가 시 주석을 희화화하는 풍자 소재로 활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검열 대상에까지 올려야 했는지를 두고 물음표가 쏟아졌다. 과잉반응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탓인지 지난 19일부터는 해당 사진 검색이 다시 가능해졌지만, 이미 세계적인 비아냥을 산 이후였다.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국가 지도자에 대한 풍자는 꾸준히 있어 왔지만 모든 풍자가 검색 검열이나 불법으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다. 풍자는 오랜 시간 표현의 자유와 특정 개인, 민족, 종교, 정치의 모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왔다.
英 총리 비판한 노래 인기
英 총리 비판한 노래 인기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AP 연합뉴스
다양한 영역에 풍자가 존재하지만, 특히 한 국가의 정치나 정치인 혹은 민족과 종교를 겨냥한 풍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첫 번째 사례는 영국이 총선을 앞둔 지난 5월 발표된 테레사 메이 총리를 풍자한 노래다.

‘라이어 라이어 2017총선’(Liar Liar GE2017)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정치운동 단체가 기획한 캠페인의 하나로 현지의 한 뮤지션이 제작했다. 레게와 펑키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메이 총리를 ‘거짓말쟁이’라고 지칭하며 일관되지 않은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영국의 교육과 빈곤, 국가보건 서비스 등의 문제를 랩 형식으로 리드미컬하게 담았다. 메이 총리의 연설과 인터뷰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까지 공개됐다.

이것이 어느 국가에서나 들을 법한 풍자 노래라고 생각하면 오산인 이유는 이 노래의 ‘성적’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5월 26일 이 노래가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영국 아이튠스 다운로드 차트에서는 2위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는 주중 업데이트 7위에 올랐다. 연이은 테러와 대형 화재 탓에 영국 정치권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고,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국민들의 불안과 갈등이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진 시기였던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현 세태와 지도자를 풍자한 노래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일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의 사례가 정치를 겨냥한 풍자의 위력을 보여 준 것이라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프랑스의 사례는 종교와 민족을 겨냥한 풍자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 준다.
만평 때문에 테러당한 佛언론
만평 때문에 테러당한 佛언론 AFP 연합뉴스
2015년 1월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옷을 입지 않은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의 만평을 게재한 뒤 범이슬람권의 공분을 샀다.

이에 이슬람 지하디스트인 쿠아시 형제가 사무실을 급습해 총기를 난사했고,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같은 해 11월의 파리 테러, 다음해 7월의 니스 테러로 이어지면서 종교와 민족을 겨냥한 풍자만화 한 편이 가져온 끔찍하고 안타까운 나비효과를 실감케 했다.

위 사례를 통해 풍자의 명확한 특징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하나는 풍자가 희화화해서 놀리거나 비판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것, 또 하나는 풍자의 영역이 몹시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정치(혹은 정치인)는 풍자가 허용되는 영역, 즉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는 영역으로, 종교와 민족은 그렇지 않은 영역으로 이분화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인 프랑스 인권선언의 11조는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저작하고 출판할 수 있다. 단 모든 시민은 법률에 규정된 경우에는 이러한 자유의 남용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는데, ‘자유’와 ‘남용’의 애매모호한 영역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각 나라가 가진 고유의 사회적 금기, 문화, 인물에 대한 풍자는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으면서도 때로는 인권에 반(反)하거나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한 몰지각함과 멸시를 드러내기도 한다.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음을 뜻한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 표현의 자유만큼 해석의 자유도 존중한다면, 또 풍자가 가진 위력을 우려한다면 중국 정부가 특정 곰돌이 푸 그림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것이 어쩌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닐 수 있다. 다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고려했을 때 중국에서는 제2, 제3의 곰돌이 푸 또는 더욱 다양하고 기발한 풍자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중국 정부가 일일이 이를 검열하고 금지할 수 있을는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huimin0217@seoul.co.kr
2017-07-2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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