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檢갈등의 해묵은 뿌리…공판중심주의 운용에 시각차 현격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무죄 선고가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후 5년간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이 지금의 사법갈등 사태를 초래한 촉매제로 작용했지만, 사실은 법원에 대한 검찰의 불만이 5년내내 누적돼 온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24일 대검찰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2004년 0.13%에 그쳤던 1심 재판부의 연평균 무죄율(무죄선고인원/선고인원)이 이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연평균 0.27%로 배 이상 높아졌다.
2005∼2009년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 수도 총 1만6천403명(연평균 3천280명)으로 2000~2004년 8천142명(연평균 1천628명)에 비해 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1심에서의 선고 인원은 2000~2004년 635만1천682명에서 2005~2009년 616만8천429명으로 2.89% 감소했다.
최근 5년간 무죄율은 2005년 0.18%, 2006년 0.21%, 2007년 0.26%, 2008년 0.30%, 2009년 0.37%로 등 한번의 예외도 없이 5년 연속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1심 재판부의 무죄선고 인원도 2005년 2천221명, 2006년 2천362명, 2007년 3천187명, 2008년 4천46명, 2009년 4천587명으로 5년째 증가세를 지속했다.
이처럼 5년간 무죄율이 계속 상승한 것은 이 대법원장 취임 후 단행된 법원 주도의 사법개혁 과정에서 ‘공판중심주의’가 본격 도입된데 따른 것으로, 이번 사법갈등 사태도 이 제도의 운용을 둘러싼 시각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이나 조서 대신 법정에서 제시되는 증거와 진술에 비중을 둬서 유·무죄를 가리는 공판중심주의는 검찰의 유죄 입증을 종전보다 어렵게 만들어 무죄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판중심주의와 관련해 이 대법원장은 2006년 대전지법 순시에서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며 검찰에 대한 불신감을 표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그는 당시 “법원이 재판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고 발언해 검찰의 극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법정 진술과 수사과정에서 한 진술에 대등한 증거능력을 부여하지 않고 차등을 두는 것이 무죄율을 높이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것은 우리(검찰)가 생각하는 공판중심주의와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 조서를 믿지 못하고 법정에서의 증언에 더 많은 무게를 두다보니 위증이 많아지는 등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저쪽(사법부)에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못느끼고 있다”며 공판중심주의의 운용상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법원에 접수된 위증사건은 2004년 1천13건에서 2008년 1천858건으로 80% 이상 늘어났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에서 이뤄지는 증거수집 절차나 조서를 철저하게 무시해야 하는 것으로 법원이 (공판중심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게 문제”라며 “가장 구체적인 증거물인 영상녹화물도 본증(本證)으로 못쓰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무죄율 상승은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논쟁거리가 아니라며 제도 운용상의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의 시각차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대법원 관계자는 “선진국에서 보듯 수사기록보다 법정공방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가 정착되면 무죄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일정 수준까지 상승한 뒤 안정을 찾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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