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공개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정치 비사(秘史)와 인간적 고뇌가 담겼다.1천300쪽 분량으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서문을 썼다.DJ 측은 미공개 일기를 별도로 발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정희와 YS=고인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목포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1968년 새해 청와대에서 유일하게 대면했다면서 “그는 친절했고 내 질문에 성의있게 답했다”고 회고했다.
10.26 사태 전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만남 주선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일화도 소개하며 “나는 진실로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생전에 충분히 얘기해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스럽다”고 말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해선 90년 3당 합당을 언급,“민심에 대한 쿠데타이자 야합의 주역이 김씨였다는데 충격을 받았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보다 집권욕이 앞섰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민주투사’ 김영삼은 이렇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YS 정부에 대해서도 “문민정부는 용을 그리려다 뱀을 그렸고,그 자신도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로 변해 버렸다”고 혹평했다.
△노무현=임기말인 2002년에 터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노 당선인 측이 대북관계보다 정치논리를 따졌다”며 “참으로 이해하기 황당하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국민의 정부 대북일꾼들을 의심했다.그런 그를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침묵도 이해할 수 없었고 특히 한화갑 당시 대표의 방관적 자세는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고인은 민주당 분당사태와 관련,“노 전 대통령이 왜 저리 조급하게 서두르며 일부러 적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산토끼를 불러들이려다 집토끼마저 내쫓는 불행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 현정부 비판=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관련,“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1,2차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답도 없었다”고 지적했고 현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에 대해선 “동족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개헌 문제와 관련,“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왔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지만,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정.부통령제였다”며 “이렇듯 권력 상층부가 서로를 인정하면 망국적 이념공세나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사=고인은 자신이 서자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등 개인사를 풀어냈다.
사별한 첫번째 부인인 차용애씨에 대한 세간의 자살설에 대해 “가슴앓이가 심해 약을 먹었는데 잘못됐는지 혼수상태에 빠졌고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나는 통곡했다”고 말했다.
세 아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쏟아냈다.홍업,홍걸씨 비리 의혹에 대해 “당시 정권교체를 확신했던 검찰은 ‘지는 권력’을 향해 비수를 겨눴고 아들이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고,특히 막내 홍걸씨에 대해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따랐다.모든 것이 나의 부덕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자책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남 홍일씨에 대해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뼛속까지 아팠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언론 설명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니셜(DJ)을 쓰는 것을 굉장히 안 좋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호칭할 때도 ‘YS’라는 말을 거의 안썼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 “시사만화에 자신의 코가 늘 크게 그려지는 데 대해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고,대식가라는 통설에 대해 억울해했는데 이런 에피소드는 자서전에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박정희와 YS=고인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목포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1968년 새해 청와대에서 유일하게 대면했다면서 “그는 친절했고 내 질문에 성의있게 답했다”고 회고했다.
10.26 사태 전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만남 주선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일화도 소개하며 “나는 진실로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생전에 충분히 얘기해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스럽다”고 말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해선 90년 3당 합당을 언급,“민심에 대한 쿠데타이자 야합의 주역이 김씨였다는데 충격을 받았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보다 집권욕이 앞섰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민주투사’ 김영삼은 이렇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YS 정부에 대해서도 “문민정부는 용을 그리려다 뱀을 그렸고,그 자신도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로 변해 버렸다”고 혹평했다.
△노무현=임기말인 2002년에 터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노 당선인 측이 대북관계보다 정치논리를 따졌다”며 “참으로 이해하기 황당하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국민의 정부 대북일꾼들을 의심했다.그런 그를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침묵도 이해할 수 없었고 특히 한화갑 당시 대표의 방관적 자세는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고인은 민주당 분당사태와 관련,“노 전 대통령이 왜 저리 조급하게 서두르며 일부러 적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산토끼를 불러들이려다 집토끼마저 내쫓는 불행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 현정부 비판=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관련,“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1,2차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답도 없었다”고 지적했고 현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에 대해선 “동족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개헌 문제와 관련,“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왔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지만,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정.부통령제였다”며 “이렇듯 권력 상층부가 서로를 인정하면 망국적 이념공세나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사=고인은 자신이 서자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등 개인사를 풀어냈다.
사별한 첫번째 부인인 차용애씨에 대한 세간의 자살설에 대해 “가슴앓이가 심해 약을 먹었는데 잘못됐는지 혼수상태에 빠졌고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나는 통곡했다”고 말했다.
세 아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쏟아냈다.홍업,홍걸씨 비리 의혹에 대해 “당시 정권교체를 확신했던 검찰은 ‘지는 권력’을 향해 비수를 겨눴고 아들이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고,특히 막내 홍걸씨에 대해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따랐다.모든 것이 나의 부덕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자책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남 홍일씨에 대해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뼛속까지 아팠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언론 설명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니셜(DJ)을 쓰는 것을 굉장히 안 좋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호칭할 때도 ‘YS’라는 말을 거의 안썼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 “시사만화에 자신의 코가 늘 크게 그려지는 데 대해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고,대식가라는 통설에 대해 억울해했는데 이런 에피소드는 자서전에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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