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측에 경색책임” 고도의 협상전략 구사
남북 비핵화 회담으로 첫 걸음을 떼려던 6자회담 재개 흐름이 다시 꼬이는 듯한 분위기다.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30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측과 더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하고 나선 것이다. 연초부터 남측을 향해 전방위적 대화공세를 전개해 온 북한이 ‘강경한 얼굴’로 돌변한 분위기다.
현재로서는 북한 군부의 격앙된 반응이 예비군 사격훈련 등 특정사안에 대한 일시적 대응인지, 아니면 고도의 협상전략 차원인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핵 외교가에서는 시기적으로 북ㆍ중 정상회담이 끝난 지 나흘만에 나온 북한 당국의 공식 반응이라는데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의 정세운용 방향에 대한 북한 내부의 ‘정리된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줄다리기 국면을 앞두고 평양의 ‘착점’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북한이 현시점에서 느닷없이 남북 당국간 대화를 거부하겠다고 나온 ‘진짜 의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남북 비핵화 회담을 출발점으로 하는 현재의 6자회담 3단계 접근방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지배적 분석이다.
북한으로서도 중국 지도부의 ‘설득’으로 인해 남북 당국간 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불가피한 수순으로 판단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남북 비핵화 회담을 앞두고 보다 유리한 협상고지를 선점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한의 대북강경 기조를 압박하는 게 긴요하다는 쪽으로 일차적 전략좌표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소식통은 31일 “전체적인 대화국면 자체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남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술적 포석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 선행조치 4∼5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어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천안함ㆍ연평도의 ‘문지방’을 넘지 않고는 남북대화가 의미 없다”고 말해 천안함ㆍ연평도 사과가 사실상 ‘조건화’된 듯한 분위기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특대형 모략극”이라고 비난하며 국제무대에서 외교전까지 벌였던 북한으로서는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 강해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으로서는 남측이 천안함ㆍ연평도 사과요구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고 있다고 책임을 떠넘기며 여론전을 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천안함ㆍ연평도 사과 요구를 비롯해 남측이 제기해온 전제조건들을 완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는 분석이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생략’하고 미국과의 대화로 직행하려는 장기적 포석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직후 장기 억류된 전용수씨를 석방시킨 것도 북ㆍ미대화를 겨냥한 신호라는 풀이도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과 공동보조를 취해온 미국으로서는 현시점에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는 것이 전략적 실익이 크지 않은데다 한ㆍ미간 균열로 인해 자칫 외교적 부담을 떠안게 될 소지가 있다는 풀이다.
중국으로서도 남북대화를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일정한 여건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이 같은 강경한 태도는 남측의 정책변화를 압박하려는 고도의 협상전략으로 풀이되며 앞으로 남측을 포함한 관련국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이느냐가 정세변화의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는 미국, 일본과 ‘압박공조’를 유지하며 현행 대북강경 기조를 고수하려고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천안함ㆍ연평도 문제를 ‘짚지 않고’ 남북 당국간 대화와 6자회담을 여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 속에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 시점에서 후퇴할 경우 3년 넘게 지켜온 ‘MB 대북정책’ 기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당분간 우리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상황을 관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북 식량지원도 ‘서두르기’ 보다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남ㆍ북을 상대로 ‘역할’을 시도했던 중국도 남북대화의 진전상황을 일단 관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 같은 남북간 줄다리기 국면이 계속 ‘접점’없이 이어질 경우 상황이 매우 가변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추가도발 카드를 꺼내며 ‘대화 압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고 한반도 상황안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미ㆍ중으로서는 다시금 대화재개 흐름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정부로서는 대화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 요구와 비핵화 트랙을 적절히 ‘분리’해내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외교가의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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