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보안성 내부자료 통해 본 北사회 단면
개신교 선교단체 갈렙선교회가 공개한 북한의 인민보안성(현 인민보안부. 우리의 경찰청격) 내부 참고자료는 시장경제 개념이 자리잡힌 북한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또 북한에서도 병역기피나 안락사 현상이 등장하고, 공무원 등을 접대해 부당이득을 얻으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된 남한과 외국 영화의 북한 내 유통 역시 처벌 사례로 수록돼 밀려드는 외국문화에 꼼짝없이 노출된 북한 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에도 자리잡은 ‘시장’ 개념 = 돼지를 길러 고기를 파는 사람이 성장촉진제 등을 사들여 더 많은 고기를 팔고 폭리를 얻었다면 북한에서는 처벌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가 20일 입수한 인민보안성의 ‘법투쟁부문 일꾼들을 위한 참고서’를 보면 정답은 ‘아니오’다.
참고서의 설명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폭리를 취하더라도 자기의 노력으로 시장을 통해 허용하는 가격 한도 내에서 돈을 벌어 소비했기 때문에 위법성이 전혀 없다.
한도 내 가격을 명시해 계획경제의 범위로 시장거래를 한정하기는 했지만 이 사례는 시장에 많은 물품을 내다 팔고 그에 비례해 이득을 얻는 시장개념이 이미 북한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자전거를 만들어 역(驛)에 나가 개인짐을 운반해주고 돈을 받았을 때 “자기의 노력을 판 행위에 대해 범죄로 규정한 것이 없어 범죄로까지 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나 미역에 물을 뿌려 판 식품판매원에게 ‘상품판매질서위반죄’를 적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고서는 사회주의 경제를 침해하는 범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국가재산에 손을 대는 것은 물론 임무를 태만히 해 국가에 피해를 주는 범죄에 대해서도 상당부분을 할애해 북한의 경제난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병역기피ㆍ뇌물 만연 = 참고서가 제시하는 법 조항을 보면 북한 사회에서도 병역기피나 안락사 같은 문제가 사회문제화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참고서에 따르면 대학에 가기 위해 입대를 안 하려는 5명에게 미화 800달러를 받고 신체검사표를 위조해준 병원의사에게 뇌물죄와 군사복무동원기피죄가 함께 적용됐다.
시력이 좋지 않다고 꾀병을 부려 군사동원을 피했다가 나중에 눈이 좋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군사복무동원기피죄를 물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북한에서도 군복무나 관련 의무를 면하려는 부정한 시도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안락사가 불법임을 강조하는 사례도 나온다.
참고서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사망케 했을 때 모자를 살인죄의 공범자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불순한 목적이나 동기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피해자가 요구한 것이 없어 범죄”라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일처리에 청탁과 접대가 개입해 부당한 결과를 낳는 일도 북한 사회에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서는 가격 제정을 맡은 공무원이 ‘음주접대’를 받고 마음대로 가격을 매겨 ‘가격사업질서위반죄’로 처벌받는다는 등 뇌물죄와 관련한 사례를 여러 차례 등장시켰다.
남한이나 미국의 영화가 수록된 CD를 몰래 보고 내다판 주민을 형법상 퇴폐적인 행위를 한 죄와 퇴폐적인 문화 반입ㆍ유포죄 등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조항을 보면 북한사회에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담은 CD가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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