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병사 GOP생활관 문 두드린 후에야 귀순파악…6일간 사건 은폐
지난 2일 밤 북한군 병사가 강원도 고성지역 동부전선 철책을 넘어 귀순할 당시 우리 군의 경계태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귀순 북한군 병사가 우리측 GOP(일반전방소초) 장병들의 숙소인 생활관(내무반) 문을 두드리며 귀순 의사를 표시할 때까지 우리 군은 귀순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해당 부대는 처음에는 소초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 TV)로 북한군 병사를 확인했다고 최초 보고했다가 다음날 출입문을 노크했다고 정정보고를 하는 등 우왕좌왕했고, 합참상황실은 정정보고 내용을 윗선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합참상황실 보고 누락..총체적 기강해이 = 군의 한 관계자는 10일 “합참의 전비태세검열실에서 확인한 결과 귀순자(북한 병사)가 소초(생활관)의 문을 두드리고 우리 장병들이 나가서 신병을 확보했다”며 “CCTV로 인지했다고 잘못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군 귀순자 사건 발생 직후 해당 부대는 합동참모본부에 소초의 CCTV로 북한군 1명의 귀순을 인지했다고 처음 보고했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지난 8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CCTV를 통해 신병을 확보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해당 부대는 다음날인 지난 3일 오후 “귀순한 북한군이 소초 생활관 출입구 문을 노크하여 신병을 확보했다”고 합참상황실에 정정 보고를 했다.
이 보고를 받은 상황실 실무자는 정 의장 등 윗선에 이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 부대의 경계근무 소홀과 함께 군령권을 행사하는 합참의 상황실마저 보고를 누락하는 등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해이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합참 상황실에서 실무 착오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면서 “상황보고 과정의 문제점을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군 소식통은 “GOP 생활관 출입구 상단에 CCTV가 설치돼 있는데 CCTV에 녹화된 것이 없다”고 밝혀 당시 최전방 경계소초의 CCTV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이 동부전선 철책을 넘어 GOP 생활관까지 오는 동안 경계 병력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최전방 경계태세가 허술했는데다가 이를 은폐·축소까지 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잠수정 소동으로 경계강화한 날 뚫려 = 북한군이 귀순한 2일은 강릉 경포대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해당 지역 군이 경계태세를 강화한 날이기도 하다.
북한군 귀순 당시는 야간이어서 GOP에서 근무하는 40여명의 장병 중 15명가량은 철책 경계근무에 나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소초 생활관에는 상황 근무자 1명과 불침번 1명이 근무를 서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무장한 북한 병사가 소초 생활관의 문을 두드리자 근무자를 포함해 장병 3명이 뛰어나갔고 귀순자는 “북에서 왔다.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군 당국은 해당 지역 북한군 귀순 사실을 숨겨오다가 사건 발생 6일 뒤인 8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참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가 나오자 사실 관계를 공개했다.
지난 6일 북한군 병사가 경의선 남북관리구역 초소에서 상관 2명을 사살하고 귀순했을 때 언론에 즉각 알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잇따라 뚫리는 최전방 경계태세 = 군 당국이 경계태세의 허점을 드러낸 북한군 귀순은 공개하지 않고 북한군의 기강해이를 보여주는 귀순은 공개하는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 의장은 합참 국정감사 당시 이런 지적에 “남북관리구역에서의 북한군 귀순은 우리도 알고 적도 아는 사안이어서 바로 발표해도 상관이 없었다”며 “그러나 동부전선 귀순은 적도 모르고 있었다. 남쪽으로 귀순한 사실이 확인되면 북한의 가족이 곤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9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붙잡힌 탈북자도 해안 철책을 통과한 뒤 엿새간 교동도에 머물렀는데도 주민 신고 전까지 붙잡지 못해 군 경계태세의 허점을 노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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