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접촉 상세내용 공개로 남북관계 부담될수도”남북대화 재개시 5·24조치 협상에도 영향 미칠듯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경제적 대가를 바란 북한의 태도로 남북정상회담이 틀어졌으며, 중국은 남북을 오가며 회담 성사를 위해 적극 중재에 나섰다고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공개했다.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도 정상회담 논의는 계속 됐으며, 비밀 접촉을 담당했던 북한의 고위 관계자가 공개 처형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잘못된 사고 바로잡아야” =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조문차 방한한 북한 대표단은 이 전 대통령의 예방을 원한다고 당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을 통해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불쑥 면담을 신청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만나주는 것은 북한의 착각을 더욱 견고히 할 뿐”이라면서 “무엇보다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시혜를 베풀듯 정상회담에 응하고,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 조문단은 하루가 지난 후 일반 출입자와 같은 절차를 거쳐 청와대를 방문해야만 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했던 북측 인사가 공개처형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2월5일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에 들어왔다. 대좌(우리의 대령) 1명, 상좌(대령과 중령 사이) 1명, 통신원 2명을 대동했다”면서 “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그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처형된 인물은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추정된다.
정상회담을 논의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매우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만찬장에서 공연팀을 격려하기 위해 불과 20∼30센티미터 높이의 단상에도 혼자 올라가지 못했으며, 3개월 후인 12월 사망했다”고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앞서 북한은 이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불발됐다.
북한이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줘 감사하다’는 내용의 이 전 대통령 친필 서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선거 동안 나를 비방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내가 당선됐다는 것인데 어이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원자바오, MB와 김정일 간 ‘메신저’ 역할도 = “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는데 정상회담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과 만난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전한 내용이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한 회담은 거부하고, 서울에서 개최하자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주 후 이 전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는 다시 만났다.
2009년 10월 24일 태국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난 원 전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대통령 각하를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듬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를 거친 후인 2011년 5월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중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원 전 총리는 이 전 대통령에게 긴급 전갈을 보냈다.
다음 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는 원 전 총리는 “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김 위원장 밑의 사람들의 권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이 직접 만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김 위원장 모르게 북측 관계자들이 여러 가지 경제적 조건을 제시하며 회담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한편, 퇴임 직전인 2012년 1월 9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수석과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은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안심시키고 통일 필요성을 강조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천안함 폭침 北 소행 규명 늦어 “어쩔 수 없이 무력 응징 포기” =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지자 응징 조치를 생각했지만 증거를 찾는 데 50일이 소모됐다”면서 “무력 보복 조치를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술회했다.
연평도 포격 당시 ‘확전 자제’라는 메시지가 와전된 경위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하지도 않은 얘기가 왜 뉴스에 나오느냐. 우리 민간인이 포격당했는데 확전을 걱정할 상황이냐”고 질책했지만 자신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이 발언 때문에 결국 엄청난 후유증을 겪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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