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러시아 전승절 김정은 대신 김영남 파견키로
북한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하기로 했다.북한은 4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에 참석한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이번 기념행사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크렘린 공보실 관계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이 불발되면서 격이 훨씬 떨어지는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가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대외적으로 국가수반이자 그동안 정상외교를 전적으로 도맡아온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보내 그나마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대한 외교적 예의를 갖췄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에 참석해 이란 대통령 등 여러 국가의 정상과 회동하는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북한의 정상외교를 수행해왔다.
북한 매체들도 양국간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러시아를 소개하고 있다.
대외용인 평양방송은 러시아측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불참을 통보한 이튿날인 2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승전 행사 참석자들에게 보낸 축하서한을 상세히 보도했다.
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러시아의 전략무력 강화 움직임을 높이 평가하고 노동절 경축 모습을 전하는가 하면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 신문들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아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고 전했다.
러시아도 비록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이 불발됐지만 그나마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참석으로 간신히 체면을 세우게 됐다.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불참이 양국 경제협력 합의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이같은 움직임에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불참으로 인한 양국간의 앙금은 여전히 침잠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고지도자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북한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을 일방적으로, 공개적으로 압박하며 여론몰이를 한데 대한 불쾌감이 남아있을 수 있다.
북한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 러시아 측에 비공식적으로 불만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에 비해 러시아의 불만과 배신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담당 보좌관(외교 수석)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 러시아 고위 당국자들이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을 기정사실화했던 만큼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행사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등 서방 정상들이 대부분 불참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을 띄워 ‘흥행몰이’를 노렸던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구기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과 달리 러시아 언론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불참을 노골적으로 비판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동병상련 속에서 북한은 중국의 공백을 대신해줄 러시아가,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동진정책에 협력해줄 북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양국관계는 장기적으로 순항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무산에 대해 러시아가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양국의 전략적 고려 속에 추진중인 북러관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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