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에게”…참전 유공자의 눈물 젖은 편지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에게”…참전 유공자의 눈물 젖은 편지

오세진 기자
입력 2019-06-24 18:01
수정 2019-06-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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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우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2019.6.24 연합뉴스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우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2019.6.24 연합뉴스
“저는 오늘, 돌아오지 못한 나의 전우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박동하(94)씨가 24일 청와대에서 미리 준비한 편지를 낭독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나의 전우들에게’가 제목이었다.

이날은 청와대가 6·25 전쟁에 국군과 유엔군으로 참전한 유공자들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한 날이다. 박씨는 전쟁 당시 프랑스 대대 소속으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한 유공자다.

박씨는 단상에 올라 준비한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어느덧 녹음이 짙어지고 날씨가 더워지는 것을 보니 6월이구나. 매년 이맘때면 6·25 전쟁에 참전했던 그해 여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너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전쟁 중에 사망한 전우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박씨는 눈물을 보였다.

“전투를 치르고 나면 전우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지 않았지. 전우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어느 날엔가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나서 자리를 비운 사이 포탄이 떨어져 우리 전우들을 한꺼번에 잃은 날이 있었지. 어떤 이는 머리가 없고, 어떤 이는 다리가 없고, 누군가는 배가 터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최근 화살머리고지를 다녀온 일을 언급하면서도 울먹였다.

“최근에 국방부와 함께 화살머리고지에 가서 너희들이 묻혀 있을 만한 지점을 확인하고 돌아왔지···. 그리고 그곳에서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나마 마음이 놓이더라. 67년 내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서 너희들과 함께하고 있다.”

편지 낭독을 마친 박씨는 청중들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참전 유공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6·25 전쟁 참전용사 한 분 한 분이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이라면서 “참전용사 여러분의 헌신과 애국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참전 유공자들께서 평화의 길잡이가 돼 달라”고 밝혔다.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낭독한 편지. 2019.6.24 청와대 유튜브 화면 캡처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낭독한 편지. 2019.6.24 청와대 유튜브 화면 캡처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2019.6.24 청와대 유튜브 화면 캡처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2019.6.24 청와대 유튜브 화면 캡처
래는 박씨가 낭독한 편지 전문.

어느덧 녹음이 짙어지고 날씨가 더워지는 것을 보니 6월이구나. 매년 이맘때면 6·25 전쟁에 참전했던 그해 여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너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러나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 이제 내 기억도 희미해져 가는 거구나.

얼마 전 우리의 마지막 전투 장소였던 화살머리고지에 다녀왔다. 그곳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피를 흘렸는지, 너무나도 많은 전우들이 이 땅을 지키다가 전사했다. 화살머리고지를 지키기 위해 밤새도록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기억이 나는구나.

전투를 치르고 나면 전우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지 않았지. 전우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어느 날엔가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나서 자리를 비운 사이 포탄이 떨어져 우리 전우들을 한꺼번에 잃은 날이 있었지. 어떤 이는 머리가 없고, 어떤 이는 다리가 없고, 누군가는 배가 터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날만 생각하면 너희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구나. 그런 세월이 흘러 어느덧 67년이 지났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최근에 국방부와 함께 화살머리고지에 가서 너희들이 묻혀 있을 만한 지점을 확인하고 돌아왔지. 그리고 그곳에서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나마 마음이 놓이더라. 67년 내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서 너희들과 함께하고 있다. 여전히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구나.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가운데)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단상에 서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우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2019.6.24 연합뉴스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박동하(가운데)씨가 24일 낮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과 유엔군 참전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단상에 서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우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2019.6.24 연합뉴스
내가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너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냐. 오늘 여기에 나 혼자 청와대에 오게 되어 너희에게 더 미안한 마음은 참을 수가 없다. 함께 왔다면 얼마나 좋았느냐.

죽어서라도 한순간 너희와 다시 만나고 싶구나. 너와 너희들의 후손들은 그곳에 잠들어 있는 너희들을 기억하고 시체 하나가 없을 때까지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부디 영면하라.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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