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독일 순방 결산
“‘베를린 구상’에서 밝힌 대로 북핵 문제 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 나간다는 우리 정부의 해법에 대해서 국제적인 지지를 얻은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다만 ‘난제’이긴 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건 부담으로 남는다.”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4박 6일간의 독일 순방 결과에 대한 성적표는 이렇게 요약된다.
G20정상 부부 만찬 기념촬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각국 정상 부부들이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엘부필하모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만찬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문 대통령, 김 여사, 줄리아나 아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부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남편 요아힘 자우어, 펑리위안 중국 국가주석 부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토베카 마디바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부인,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둘째줄 왼쪽부터 이리아나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인,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브리짓 트로뇌 프랑스 대통령 부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함부르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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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해법, 한국 주도권 인정 ‘성과’
특히 ▲북한 붕괴·흡수통일·인위적 통일 배제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 5대 대북정책 방향과 ▲성묘를 포함한 추석 이산가족 상봉 ▲남북 정상회담 등 4대 제안을 포괄하는 ‘베를린 구상’은 지난 2000년 남북 관계의 물꼬를 돌려 놓았던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의 ICBM급 도발에도 베를린 구상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햇볕을 볼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의 소신은 물론 청와대 ‘대화론자’들의 논리에 무게가 실린 덕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당초 청와대에서도 쾨르버재단 연설 자체에 대한 찬반이 엇갈렸다”고 설명했다. 17년 전 DJ의 베를린선언이 불과 3개월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진 건 이전부터 정보당국을 통한 북한과의 물밑접촉이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보수정권 9년 동안 남북 간 물밑대화는 단절됐고 정보당국 차원의 대화 역시 복원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바닥을 마주칠 수 없는 상태’여서 제안을 내놓아도 결실을 맺기 힘들다는 반대도 많았다. 그럼에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임기 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 보수 진영에서 정치적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거나, 차기 정권에서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사드, 위안부 ‘싱크홀’ 재확인
중국, 일본과의 연쇄 정상회담에선 사드 배치 논란(중국), 위안부 합의 문제(일본)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한국이 한·중 관계 개선과 발전에 장애를 없애기 위해 중국의 정당한 관심사(사드)를 중시하고 관련 문제를 타당하게 하길 희망한다”며 사실상 사드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로 한반도 위협 요인이 없어져야만 철회될 수 있다고 맞섰다. 다만, 두 정상은 고위급 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하기로 하는 등 확전은 자제했다. 일본과는 정상 간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등 관계 개선 토대를 마련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고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문제를 두루 지적했다.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는 ‘난제’
‘한·미·일 대 중·러’의 전선이 명확해진 점은 또 다른 숙제다. 지난 5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부터 징후가 감지됐다.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고 중대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안보리 성명 초안을 제안했지만, 러시아가 “ICBM이 아니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며 초안 수정을 요구했고, 끝내 무산됐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6일 시 주석을 만난 문 대통령은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의 노력을 요청했지만 시 주석은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는 한국과 북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문제”라며 ‘미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시 주석은 한·미·일이 공식화한 ‘중국 역할론’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결국 한·미·일 협력체제로 가려는 것 아니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는 불가피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미·일 3각 공조는 물샐틈없이 단단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찬회동을 가진 3국 정상은 역시 미국 제안으로 첫 3국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최대한의 대북 압박과 추가제재를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새 결의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북한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밝은 미래를 제공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적극적 노력을 압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독일과는 2번이나 정상회담
문 대통령은 다자외교 데뷔무대였던 G20 정상회의 기간 9개국과 10차례의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한반도 주변 4강을 빼면 독일·프랑스·인도·캐나다·호주·베트남 등 6개국 정상과 첫 만남을 갖고 현안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독일은 대통령과 총리까지 두 번의 정상회담을 소화했다. 캐나다는 예정에 없었으나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의장, 유엔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등 국제기구 수장과도 면담을 이어 갔다. 4강 외교 탈피를 강조해 온 문 대통령으로선 한반도 문제를 세계적 이슈로 확산시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모두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새로운 위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번 위반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기를 희망한다.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고 말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치·안보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 게 원칙인 G20에서 나온 메르켈 총리의 언급은 우리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함부르크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2017-07-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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