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황당한 판결” vs “민주주의 확인”
법원이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강제해산에 항의하며 소란을 피운 민노당 강기갑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을 놓고 판결의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일각에서는 판사의 개인적 성향까지 들먹이며 ‘황당한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비난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소수당의 정치적 발언권을 인정해준 ‘당연한 판결’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지난해 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상정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문학진 의원과 민노당 이정희 의원 사건이나 민노당 당직자 폭력 사건 등 비슷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 ‘국회폭력’에 재판부별로 판단 달랐나=이번 사건과 비교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문학진 의원과 이정희 의원에 대한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당시 벌금형이 선고된 문 의원과 이 의원에 대한 판결 내용을 근거로 재판부마다 국회폭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른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판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동일하다.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질서유지권을 행사했다면 피고인들이 이에 반발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한 것.
두 재판부는 “장래 소란행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개연성만으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할 수 없다”며 “따라서 부당한 질서유지권 발동에 근거한 국회 경위와 국회 공무원의 직무집행은 위법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가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두 판결에 차이가 있다면 문 의원과 이 의원은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이 선고됐고,강 의원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무죄가 선고됐다는 점이다.
당시 문 의원은 국회 외통위 위원장 비서실 출입문을 해머로 내리쳐 손상한 혐의로,이 의원은 외통위 위원들의 명패 5개를 바닥에 던져 부순 혐의로 기소됐다.
물론 강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보조탁자를 쓰러뜨리고 원탁을 손바닥으로 때려 공용물손상 혐의도 적용됐지만,재판부는 “이는 공무집행방해의 한 방법으로서의 폭행이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에 흡수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공용물 손상보다 상위 개념인 공무집행방해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된 만큼 공용물 손상 혐의에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검찰은 “공무집행방해죄와 관련해 통상적인 법 해석과 배치되는 부당한 판결이다.강 의원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국민이 방송 등을 통해 모두 봤는데 이렇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항소키로 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우리 국회가 하루빨리 떨쳐 버려야 할 가장 불명예스러운 낙인 중 하나가 국회 폭력이다.법원의 판결 취지는 정당한 항의표시였다는 것인데 대부분 국민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사법부의 판결은 이 땅에 민주주의가 굳건하게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준 판결이다.재판부가 지적한 것처럼 국회 내에서 다양한 정치 행위가 충분히 보장되는 한편 소수정당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소통 부재’ 국회가 논란 단초 제공=그러나 이번 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책임은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소수당 입장에서는 폭력 행사라는 ‘막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이고,결국 책임소재 규명 책임을 번번이 사법부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한발 양보하며 대화와 타협을 이루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 역시 재판이 끝나고서 “사법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는 입법부의 일이 사법부로 넘어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국민들이 국회폭력 사태에 대해 느끼는 염증과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법리 사이의 괴리는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특히 지난 폭력 사태 이후 강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 책상 위에 올라가 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공중부양 강기갑’으로 회자했는가 하면 그 여파로 민노당 지지율이 10% 아래로 떨어져 강 의원은 결국 “국민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강 의원 측이 재판 과정에서 법리 싸움을 주도하면서 처벌을 피해 나갔음에도 여론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강 의원이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해서 강 의원에게 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처벌을 위한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의미다.기소와 판결 내용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국민이 국회 폭력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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