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법개혁 공개반박 왜

대법 사법개혁 공개반박 왜

입력 2010-03-19 00:00
수정 2010-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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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배제에 불만… 권위훼손 판단도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의 개혁안에 대해 대법원이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반박한 것은 당사자인 사법부를 제외하고 여당이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방식과 절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불쾌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개혁 논의에서 법원을 배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전제한 뒤 ‘매우 부적절하고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거나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마저 잃은 처사’라는 감정이 짙게 배인 표현이 잇따라 등장한 것만 봐도 사법부 내부가 상당히 격앙돼 있음을 짐작케 한다.

 유감 표명 정도가 아니라 국회를 상대로 정면 대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는 일선 판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전에 대법원이 먼저 나서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판사들을 다독여 주겠다는 함의도 담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의 안을 접한 일선 판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더구나 용산참사, 강기갑 의원, PD수첩 사건 등 법원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대법원이 나름대로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반감의 수위는 높은 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이 법관연구모임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인사나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정치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이런 안을 내놓은 것은 완전한 굴복을 요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가장 큰 쟁점은 대법관을 14명에서 24명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명분은 대법관 1인당 지나치게 많은 사건 수를 줄이겠다는 것이지만, 판사들은 사실상 ‘대법원 장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관 증원은 입맛에 맞게 대법관 인적구성을 바꾸겠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또 선례를 들며 인적구성을 바꾸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시각도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대법관 증원도 검토할 수 있지만, 하필 법원 판결에 대한 비이성적인 비판이 많았던 지금 이 시점이냐.”면서 “더구나 정치권의 불만 대상은 하급심 판결이었는데 대법관을 늘린다고 해소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도 “대법관 증원은 사법개혁 때마다 나온 단골 레퍼토리”라면서 “그런 방안을 추진할 때 누가 어떤 시점에 추진하느냐도 중요한데 지금 여권이 그렇게 주장하는 시기나 목적 등이 부적절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대법원의 권위 문제도 걸려 있다. 대법원은 판례 형성이나 변경을 위한 전원합의체 판결 때문에 최고법원으로 꼽힌다. 법률은 현실 문제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성기게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데, 이를 현실에 적용할 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례를 통해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원합의체는 ‘사실상의 입법작용’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대법관이 24명으로 늘어나면 전원합의체 운영이 어려워진다. 이는 대법원의 위상, 그리고 헌법재판소와의 관계 문제로 이어진다. 가령 대법원을 형사·민사·행정·특허 전문재판부 등으로 나눠 구성할 경우 최고법원이 아니라 단순한 3심법원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또한 법관 인사권을 대법원장에서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법관인사심의위원회에 넘기자는 것도 법원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태성 김지훈 장형우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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