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4명 이어 교수 1명 자살’ 똑같이 반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과 교수의 연쇄 자살이 15년 전인 90년대 중반 상황과 판박이처럼 똑같아 주목받고 있다.학우 4명에 이어 10일 생명과학과 교수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자 10일 밤 학생 20여명이 카이스트(KAIST)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대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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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KAIST에서는 2000년대 초에도 학생 4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으로 밝혀져 학교측이 마련한 대책이 과거부터 계속 헛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12일 KAIST 등에 따르면 1995년 8월 박사과정 4년차 학생이 학위시험 부진 등을 고민하다 목 매 숨졌고 1996년 3월에는 만 15세의 나이로 KAIST에 최연소 입학, 화제를 모았던 3학년 휴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학생은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대전과학고를 거쳐 KAIST에 입학했으나 2학년 2학기에 심한 스트레스성 증상인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정신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한학히 휴학했다가 복학했지만 성적이 크게 떨어지는 등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다시 휴학한 상태였다.
당시 각종 조기 영재교육 제도의 부작용과 일부 교육계 및 학부모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한달 뒤에는 석사과정 학생이 학과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수업에 1주일간이나 불참하는 등 힘겨워하다가 기숙사에서 옷장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1995년 8월부터 1년여 동안 4명의 KAIST 학부생 및 대학원생이 자살했다.
이어 1997년 3월에는 자신의 실력을 비관해온 교수가 목숨을 끊어 충격을 더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이 교수는 개강을 앞두고 “수재인 학생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식탁 위에 ‘일찍 관두는 게 나아’, ‘가르칠 것이 걱정이야’ 등의 문구가 적힌 쪽지를 남겼다.
당시에는 2년 가까이 동안 이 같은 연쇄자살 사태가 이어진 데 비해 이번에는 3개월여만에 집중되고 있으며 교수의 자살 동기에 차이가 있지만 15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KAIST 한 관계자는 “과거에 학생들을 억눌렀던 것은 엄격한 학사경고 등이었는데 해마다 전체 학생의 20% 가까이가 학사경고를 받았고 학사경고 3회 누적이면 제적처리 됐었다”며 “이런 부담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KAIST는 제적처리 기준을 학사경고 3회 누적에서 연속 3회 학사경고로 완화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학생들의 자살을 막지는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2001년 5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학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고 2003년에도 박사과정 대학원생 2명과 학부생 1명이 극약을 먹거나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정 주기로 연쇄 자살사건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잇따라 발생한 학생과 교수 자살사태 후 학교측이 내놓을 대책이 과연 구성원들이 앓아온 마음의 병을 얼마나 치료하고 나아가 자살사태 반복을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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