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8명, 고령·지병에도 증언활동 왕성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8명이 거주하고 있다.1992년 시작한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1천회를 맞은 14일, 나눔의 집 할머니 4명만 집회에 참석했다.
나머지 할머니들은 왜 참석하지 않았을까.
199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로 설립된 나눔의 집은 현재 ‘종합병동’이다. 평균 연령 85.8세인 이곳 할머니 중에 아프지 않은 분들이 없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에서 겪은 고초에다 노환까지 겹쳐 고통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16년간 1년에 한 명꼴로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할머니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대전시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다가 2008년 나눔의 집에 입주한 김화선(85) 할머니는 석 달째 인근 요양병원에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혈압, 당뇨, 천식 등으로 약물에 의존해오다가 올해 들어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입원했다. 최근에는 전혀 먹지 못하고 코에 꽂은 튜브로 음식물을 주입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 아름다운 재단에 평생 모은 재산 5천만원을 기부한 김군자(85) 할머니도 두 번이나 넘어져 골절 접합 수술을 받고 나서 보행기에 의존한 채 주로 집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2007년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상정 때 방미해 청문회 증언석에 앉았던 할머니였다.
당시 그는 “죽기 전에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땅까지 오게됐다...내 몸에는 너무나 많은 흉터가 남아있고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았다”고 절규해 미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 할머니는 1천회 수요집회 불참을 아쉬워하면서 “함께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 나는 누워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야”라고 말했다.
천막생활을 하면서 나눔의 집 건립에 힘을 보탰던 이용녀(84) 할머니들도 척추관 협착증에 약물로 버티고 있다. 최근엔 심리 불안까지 겹쳐 나눔의 집 식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날 1천회 수요집회 참석한 분은 김순옥(89)ㆍ강일출(83)ㆍ박옥선(87)ㆍ배춘희(88) 할머니 등 4명.
2001년 중국에서 입국해 60여년 만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최고령 김순옥 할머니는 아직도 우리말이 어눌하고 뇌ㆍ심장혈관 질환을 겪으면서도 수요집회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텃밭을 일굴 정도로 비교적 건강한 막내 강일출 할머니는 외부인이 방문하면 ‘나눔의 집 대변인’처럼 나서 한일 양국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멋쟁이’로 통하는 배춘희 할머니는 달변에 노래실력까지 자랑하면서도 백내장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수술 준비 중에 병원을 빠져나갈 정도로 어린 시절 고초로 불안감을 겪고 있다.
’친절할머니’로 통하는 박옥선 할머니는 퇴행성 관절염과 우측무릎 연골판 파열로 다리를 절면서도 수요집회에 빠지지 않는다.
’인권활동가’라고 찍힌 4개 국어 명함을 가진 이옥선(84) 할머니는 인권 외교관으로 불린다. 이 할머니는 지난 12일 홀로코스트 피해자 단체와 교류 차 미국으로 출국해 해외 증언활동을 벌이고 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이 나온 만큼 이제 법치국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이 나서 일본 정부에 한마디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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