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 기성회비 부당 판결 파장
국·공립대의 기성회비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대학에 미치는 타격은 엄청나다. 대학 등록금의 86%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탓이다. 국·공립대가 지난 10년간 거둔 기성회비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대학들은 10년 이내 거뒀던 기성회비를 모두 돌려줘야 할 판이다. 기성회비를 받지 못하면 국·공립대의 재정은 사실상 ‘파탄’날 수밖에 없다. 기성회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이 불가피한 이유다. 사립대는 1999~2000년 기성회비 반환소송이 제기되자 기성회비를 폐지, 수업료로 일원화한 까닭에 파장에서 벗어나 있다.기성회비는 1963년 당시 문교부 훈령인 ‘대학, 고·중학교 기성회 준칙’에 의거, 학교시설 확충에 사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기성회비 징수를 직접 규정한 별도의 항목은 없다. 용도도 시설·설비비, 교직원 연구비, 기타 학교 운영경비 등으로 제한됐다. 관리는 대학의 대학 자율에 맡겨지고 있다. 법원도 기성회 규약은 각 대학의 내규에 불과한 만큼 강제로 징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실제로 국·공립대는 수업료와 입학금은 동결하거나 소폭 인상하면서 기성회비를 대폭 인상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보전해 왔다. 2003~2010년 7년간 입학금 및 수업료 연평균 인상률은 4.9%에 불과했지만 기성회비 인상률은 9.5% 수준으로 전체 등록금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입학금·수업료·기성회비로 구성된 국·공립대 등록금 가운데 2009년 기준 기성회비 비중이 86.9%에 달할 만큼 대학 재정 운영의 핵심 수단이다.
실제 등록금 가운데 기성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높아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주광덕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8~2011년 국립대 등록금 대비 기성회비 비율현황’에 따르면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2008년 등록금 대비 기성회비의 비율이 95.3%에서 2009년 95.8%, 2010년 96.2%, 2011년 96.3%로 높아졌다. 특히 한국교원대학교는 4년 연속 기성회비가 등록금의 100%를 차지했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등록금 628만 8000원 가운데 기성회비가 550만 9000원인 87.6%에 달했다. 수업료는 77만 9000원에 그쳤다. 부산대도 연간 등록금 446만 9000원 중 기성회비의 비율이 81.2%였다.
기성회비가 원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된 점도 문제다. 전국 40개 국립대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년간 기성회비에서 급여 보조성 인건비로 2조 8172억원을 지출했다. 편법이다.
교과부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기성회비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기성회비를 폐지할 경우 국·공립대 재정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공립대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최근 발표한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도 기성회비 제도 개선 방안이 포함돼 있다.”면서 “급여 보조성 경비 자체는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기성회비를 폐지해 수업료로 일원화하는 법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명목상 등록금이 대폭 인상될 수밖에 없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2012-01-2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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