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성 물질, 백혈병 유발”…법원, 인과관계 인정

“발암성 물질, 백혈병 유발”…법원, 인과관계 인정

입력 2013-01-09 00:00
수정 2013-01-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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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법, 발암성 금속 취급하다 숨진 연구원에 배상 판결

발암성 금속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숨진 연구원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청주지법 민사합의12부(박정희 부장판사)는 9일 충북 청원군의 전기재료 제조업체가 2010년 숨진 근로자 박모(당시 31)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에서 “사측은 1억1천500여만원씩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패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유해 작업환경과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숨진 박씨는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2008년 8월 A사 연구개발팀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황산니켈이나 황산코발트 등 금속 원료를 물에 녹인 뒤 탈수, 건조 공정을 거쳐 파우더 형태의 제품을 만드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런 종류의 금속 원료는 국제암연구소가 발암성 1, 2그룹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박씨는 입사 후 불과 2년이 조금 넘은 2010년 9월 24일 급성전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사흘 뒤 목숨을 잃었다.

사 측은 “근로자들이 유해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 배려 의무를 다했다”며 산업재해를 부인하다가 결국 ‘박씨의 유족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사는 박씨가 발병 징후를 보이자 문제가 된 연구개발실을 탈의실로 바꾸고, 환기 시설도 개선하는 등 숨진 박씨가 근무할 당시의 작업환경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바꿨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사 측은 작업장에 집진·환기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 물질을 배출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판결에 앞서 현장 검증을 통해 박씨 사망 직전의 작업 환경을 재현, 금속 원료가 분진 형태로 누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방독 마스크와 보호장갑을 제공했지만 발암·유해물질을 차단할 수 있는 보호복이나 장화를 제공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회사 측은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들의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박씨의 사망은 산업재해 탓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개인의 면역력 차이에 따른 백혈병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박씨만 백혈병에 걸렸다고 해서 회사가 안전 배려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급성전골수성 백혈병의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하지 않더라도, 박씨는 사측의 안전 배려 의무 위반으로 인해 위험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양지의 황성주 대표변호사는 “영세업체 근로자들은 유해환경에 따른 산업재해를 주장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판결은 발암물질과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함으로써 유족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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