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국정원女 글’ 알고도 숨겨…촉소·은폐 의혹

경찰 ‘국정원女 글’ 알고도 숨겨…촉소·은폐 의혹

입력 2013-01-31 00:00
수정 2013-01-31 14:3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대선前 중간수사결과 발표 논란 이어 수사 신뢰성 의심글 성격 놓고 ‘선거개입이냐 대북심리전이냐’ 논란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9)씨의 대선 개입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김씨가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인터넷 글을 수십건 올린 것을 알고도 숨겨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김씨가 인터넷 게시글에 찬반 표시를 한 것과 사적인 글을 올린 것 외에 대선 관련 글을 쓴 것은 없었다고 밝혀왔다.

경찰은 글에서 대선을 키워드로 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대선 직전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만 조사하고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이 없다고 성급한 수사결과를 발표해 논란을 빚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경찰 수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국정원은 김씨의 글이 정상적인 대북심리전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야당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김씨의 활동을 선거개입으로 볼 여지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없다고 잡아떼던 경찰”…수사 신뢰성 의심 =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사이트 2곳에 정치·사회 이슈 등과 관련해 78개의 글을 올렸다.

이는 경찰이 그동안 설명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난 3일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김씨가 특정 사이트 2곳에서 글을 올린 흔적은 있었지만 대선이나 정치, 시사와 관련한 내용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가 야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언론 보도가 31일 나오자 경찰은 김씨가 주로 4대강이나 해군기지 건설 등 주요 사회 이슈와 관련해 78건의 글을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을 바꿨다.

취재결과 경찰은 ‘사적인 글들만 있었다’고 밝힌 지난 3일에도 구글링을 통해 김씨가 올린 글의 내용을 이미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한달 반이 넘는 수사기간 내내 말바꾸기를 거듭해왔다.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12월 16일 밤, 경찰은 대선 후보와 관련한 김씨의 댓글 흔적이 없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이달 초에는 “김씨가 올린 글도 있지만 대선과 직접 관련된 게 아닌 사적인 내용이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여기에 김씨가 정부·여당을 옹호하고 야당에는 비판적인 글을 올린 것을 공개하지 않다가 뒤늦게 시인함으로써 경찰 수사의 신뢰성 마저 의심받고 있다.

따라서 대선 직전 경찰이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만 조사한 상태에서 대선과 관련해 어떠한 댓글의 흔적도 없다는 내용의 중간수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한 배경에도 의혹을 사고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등에서는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지시 하에 경찰이 부실한 수사결과를 성급히 발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컴퓨터 전문가들도 “하드디스크 분석만으로 글의 흔적을 살피는 건 빈 껍질에서 알맹이를 찾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직적 선거개입 여부 논란…국정원 “정당한 고유 업무” = 김씨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나 사회 이슈와 관련해 올린 글은 대부분 정부나 새누리당에 유리한 내용으로 확인됐다.

타인의 게시물에 ‘추천·반대’ 형식으로 99차례에 걸쳐 단 찬반표시도 일관되게 정부ㆍ여당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경찰은 이를 불법 선거운동 정황으로 보고 공직선거법이나 국정원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정원 측은 정상적인 업무 가운데 하나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씨는 국정원 3차장 산하 대북심리전단 소속 요원으로 알려졌다. 종북단체의 정보를 수집하고 활동을 감시하는 게 주된 업무다.

그러나 김씨가 진보성향 웹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올린 글 가운데는 대북심리전 활동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내용도 포함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1월 6일 이 사이트에 ‘48번째 해외순방? 진짜 대단한 듯’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에서 “이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순방한다고 한다. 자그만치 48번째 해외순방이라는 데 압도적인 역대 최고, 정말 대단한 거 같다”고 썼다.

11월 30일 ‘해군기지 뭐 어쩌자는 거지?’라는 글에서는 “해군기지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결국 예결위에서 처리가 보류됐다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사업 시작한 지가 벌써 몇년이다…”라는 내용으로 예산안 처리를 보류한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김씨는 지난 25일 3차 소환 조사에서 “일부러 그런 글을 올려 반응을 살피는 게 내 업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감한 정치 사안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해 댓글 등 반응을 보는 것도 넓은 의미의 대북심리전이며 대선에 개입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대선 관련 키워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어도 그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김씨가 올린 글의 성격이 선거개입인지 국정원 업무 차원에서의 활동이었는지가 이번 수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다음주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