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경시, 자녀 소유물로 여기는 풍조, 정신 건강 소홀 등 영향”체계적 사례 분석 등으로 범국가적 대책 마련 나서야”
조울증을 앓던 40대 여성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아파트에서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부모의 극단적 선택에 자녀까지 희생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환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오전 8시 15분께 광주 서구 화정동 모 아파트 14층에서 40대 여성이 아홉살 아들, 다섯살 딸과 함께 투신해 모두 숨졌다.
이들이 탄 엘리베이터 CCTV에는 다가올 불행을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발랄하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딸은 커피잔을 손에 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들은 14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버튼을 누르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다른 아파트에 사는 민씨가 타고 온 차량에서 발견된 ‘신나는 학교생활 주간 학습 안내문’과 가방, 사고현장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등은 아침에 등교하는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조울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민씨의 유서에는 신장질환을 앓는 딸 등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용도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가정불화나 생활고 등을 고민한 부모의 극단적 선택으로 자녀가 희생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어머니와 딸 2명, 아들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10년 8월에는 전북 정읍에서 우울증을 앓은 30대 부부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세살배기 딸을 데리고 투신해 숨졌다.
2009년 12월 광주에서도 30대 부부가 10대 아들,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으며 같은해 5월과 4월에는 경남 창원, 전남 해남에서 일가족 4명과 3명이 각각 숨졌다.
전문가들은 동반자살이 아닌 엄연한 친족살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며 범사회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남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생명 경시,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고, 정신건강에 대한 소홀함, 사회적 무관심 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현상”이라며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한 나머지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릇된 모성의 형태로 발현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자살예방법이 시행됐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지도 못했다”며 “심리 부검 등 사후 분석으로 자료를 축적하고 자살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 정책에 반영하는 범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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