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한 장애아에게 “그래서 이불 덮었어?”

성폭행 당한 장애아에게 “그래서 이불 덮었어?”

입력 2013-03-20 00:00
수정 201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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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두절… 취조하듯… 합의종용 등 2차 가해, 못미더운 국선변호인

“변호사와 연락이 안 됐어요. 메모를 남겨도 연락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니…. 그러니 재판 진행상황을 어떻게 알고 저를 돕겠어요.”(성폭행 피해 청소년 A양)

“변호사는 6월에 지정됐는데 9월이 돼서야 겨우 첫 면담을 했어요. 1심 결심공판 하루 전이었지요.”(성폭행 피해 청소년 B양)

성폭력 범죄를 당한 아동·청소년에게 국선 변호사를 지정해주는 ‘법률조력인 제도’가 시행 1년이 됐지만 피해자들의 만족도가 떨어져 운용상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선 변호사가 피해자의 연락에 응대하지 않기 일쑤고 도리어 2차 가해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법무부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성폭력 범죄 피해아동 법률조력인 제도 시행평가’ 연구결과에 따르면 법률 조력 서비스를 받은 성폭력 피해자 61명 중 만족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47.5%인 29명에 그쳤다. ‘매우 만족’ 13명(21.3%), ‘만족’ 16명(26.2%)이었다. 반면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31.2%(매우 불만 14.8%, 불만 16.4%)였다.

불만족 의견을 낸 피해자들은 변호사와 연락이 어려웠던 점과 변호 의지 부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는커녕 2차 가해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이해 없이 강간 사건을 화간(합의에 의한 성관계)으로 단정하거나 가해자에 대해 연민을 표현한 사례, 피해자를 수사하듯 대한 사례, 합의를 종용한 사례 등이 2차 가해 사례로 소개됐다.

상담소가 지역별 성폭력 상담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조사에 따르면 한 변호사는 지적 장애인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초동 수사에는 나타나지 않고 검찰 수사에만 다녀온 뒤 “이 사건은 무죄 아니면 화간”이라고 단정해 상담소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도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남자 어른을 무서워하는 지적 장애아동을 불러 “그래서 가해자가 어떻게 했는데? 끌고 갔어? 이불을 덮었어?” 등 취조하듯 따져 물어 피해 아동의 부모가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상담소는 법률조력인의 교육 이수 의무화, 교육 방법 다양화, 법률조력인 간 경험 교류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는 법률조력인 명부에 등재된 변호사에 대해 법무부가 매년 1회 이상 의무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정작 변호사들은 교육 이수 의무가 없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용어 클릭]

■법률조력인 제도 성범죄 피해를 당한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위해 검사 직권 또는 피해자의 신청, 성폭력 피해 상담소 등의 협조 요청에 따라 무료로 국선변호인을 지정해주는 제도. 지난해 3월 16일부터 시행돼 지난달까지 3367명이 지원을 받았다.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라는 점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을 위한 기존 국선변호인제도와는 다르다. 법률조력인은 피해 상담과 자문, 고소장 작성,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법률 서비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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