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처럼… 법정서 드러난 북파공작원의 가혹훈련

영화 ‘실미도’처럼… 법정서 드러난 북파공작원의 가혹훈련

입력 2014-01-21 00:00
수정 2014-01-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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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처럼 북파공작원들이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죽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실상은 훈련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전 북파공작원이 공무수행 중 상이 인정을 받지 못하자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때문에 알려졌다.

지난해 2월 28일 수원지법 행정2단독 왕정옥 판사 판결문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모(36)씨는 모병관으로부터 50개월 근무를 마치면 1억원 이상 돈을 주고 제대하면 국가기관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1997년 4월 특수임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김씨는 강원의 한 시설에서 부대 배치 전까지 동료 24명과 함께 매일 12㎞ 달리기, 특수무술, 잠복호 구축, 수류탄 투척, 사격, M18A1 클레이모어(크레모아) 폭파, 공수훈련 등을 받았다. 100일간 훈련이 끝나고 1997년 7월 부대에 배치된 뒤에는 더 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침투, 첩보 및 요인납치를 위한 독도·모스부호 수신, 휴전선 침투 훈련, 공수강하훈련, 투검, 해상수영 등의 훈련을 맡은 선배들은 김씨와 동료들을 야구방망이로 매일 구타했다. 구덩이를 파고들어가게 한 뒤 모스부호 송수신이 틀릴 때마다 물을 채워넣기도 했고 한겨울에는 수시로 부대 앞 계곡 얼음물에 2~3시간 밀어 넣어 동료 1명이 숨지기도 했다. 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김씨 후배를 투검 훈련용 표적 옆 나무에 묶어두거나 목만 내놓고 땅에 파묻은 채 1주일을 내버려두고 욕조에서 물고문을 반복해 숨지게 했다.

결국 김씨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이유 없이 불안해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다가 50개월 군생활을 마친 2001년부터 정신분열증 증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 아직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김씨는 수원보훈지청을 상대로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했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이 공무수행 중 상이로 인정되지 않아 2011년 12월 등급 기준미달 판정을 받자 지난해 국가유공자 요건 비해당 결정취소 소송을 냈다.

왕 판사는 판결문에서 “입대 전까지 증세가 없었고 가족 중 병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점, 견디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을 겪은 점 등에 비춰보면 원고의 정신질환은 군복무 과정과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김씨 변호인은 “북파공작원의 공무관련 상이에 대해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보훈청의 의결 내용을 뒤집은 첫 판결”이라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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