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보부상 자본주의’의 한계”…”담뱃값 인상, 잘못된 공약 벌충 의도””미국식 신자유주의 환상 깨야”…”학생들 많이 놀아야” 조언도
국내 대표적 미시경제학자이면서 사회 문제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다음 달 정든 교정을 떠난다.12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이 교수는 “번잡스럽지 않게 퇴임하고 싶어 정년 기념 논문집을 안 낸 것은 물론 고별강연을 해달라는 학교 측 요청도 고사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마지막 수업에서도 특별한 말을 남기지 않았다는 그는 제자들이 이 교수와의 추억을 쓴 글들을 엮어 증정한 문집과 자신이 직접 찍은 교정 사진으로 제작한 달력만 기념으로 남겼다.
그러나 서울대에서의 31년을 포함해 35년간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 교수가 남긴 발자취는 절대 작지 않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미시경제학계의 최고 석학으로 손꼽힐뿐더러 여러 사회 이슈가 있을 때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이날도 대한항공 사태부터 기업인 사면까지 사회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렸다.
이 교수는 “대한항공 사태는 기업문화가 아직도 (총수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보부상 자본주의’를 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며 “사주가 주인 행세를 하면서 직원을 하인처럼 대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갑질’ 논란이 논란거리로 떠오르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이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압력을 형성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인 사면은 사회적 압력을 약화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기업인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일반인과 똑같이 처벌해야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풀어준다면 변화에 대한 압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경제학자로서 바라본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떨까.
이 교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크고 특히 규제 완화, 민영화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며 “현 정권은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미국 사회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근 큰 이슈가 된 담뱃값 인상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교수는 “담뱃세나 주(酒)세 인상은 국민 건강증진과 세수확대 효과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윈-윈 정책’으로서, 아무런 맥락 없이 순수히 담뱃세를 올린 것이라면 찬성”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이번에 담뱃값을 올린 데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끌고나가려는 의도가 깔렸다”며 “솔직하게 공약 이행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증세하되 어느 부분을 올릴지 논의하는 대신 손쉬운 담뱃세부터 인상한 것은 서민을 볼모로 잘못된 공약을 벌충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의 쓴소리는 31년간 몸담은 서울대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가 조금 더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입시정책이나 대학교육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 등에서 볼 수 있듯 어느 제도가 과연 공정한 제도인지, 우리 현실에 맞는지 등 진지한 고민 없이 정부 정책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가르치는 처지에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정작 그는 “많이 놀라”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놀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며 “나아가 전공에 치우치지 말고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교양을 쌓으면서 건전한 판단력과 양식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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