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 되찾았건만,치솟는 권리금·임대료에 백기
영화 ‘국제시장’의 주무대로 명소가 된 부산시 중구에서 ‘꽃분이네’를 운영하는 신미란(37)씨는 3월 가게를 접기로 했다.건물주로부터 점포를 빌려 신씨에게 다시 임대한 사람이 3월 재계약 때 권리금 5천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2년 전 계약 때 보증금 500만원(임대료 월 180만원)에 권리금 2천만원에 비하면 무려 3천만원이나 올린 금액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촬영 장소인 ‘꽃분이네’ 앞을 찾은 관광객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자신이 상표 등록한 꽃분이네 간판도 당연히 내릴 예정이다. 명소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월 부산 중구 광복로 한복판 4층 건물에서 31년째 한자리를 지키던 명물 빵집 ‘비엔씨’는 뒷골목으로 이사했다.
비엔씨는 2000년대 대기업 계열사 빵집이 맞은 편에 들어선 이후 10여년을 오로지 빵맛 하나로 버텨 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임대 보증금의 압박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관광객의 발길이 잇따라 ‘이제 허리 좀 펴겠구나’ 했지만 임대 보증금이 치솟아 오른 수익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부산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중구 광복로 일대가 재조명 받으며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이 곳 명물들은 정작 뒷골목으로 내몰리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로 일대는 ‘부산 속의 부산’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이후 부산으로 물밀듯 내려온 사람들과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해 삶을 꾸린 이래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 ‘부평시장’, ‘영도다리’ 등 대표적인 명소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1998년 부산시청이 이 곳에서 연산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행정·문화의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시청에 이어 법원 등 관공서까지 빠져나가며 상권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시와 중구는 최근 몇 년 사이 수백억원을 투입해 광복로 가로개선사업, 영도다리 부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등을 추진하는 등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부활을 꾀했다.
2007년부터 광복로 일대에서 매년 열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축제에 한해 450만 명이 다녀가는 등 축포를 쏘며 다양한 축제가 마련되는 등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민간에서도 이곳을 재조명한 예술작품을 만들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광복동 일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급증했다.
그러나 정작 토박이 상권은 하나 둘 뒤로 밀려났다.
임대 보증금과 권리금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서는 ‘비정상적인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평시장의 경우 5년 전만 해도 20평짜리 상가를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150만원이면 임대 가능했는데 지금은 최소 보증금 3천만원에 250만원 이상 줘야 한다.
특히 권리금의 경우 4천만∼6천만원이던 게 1억2천만원에서 1억3천만원 선까지 껑충 뛰었다.
중구의 메인거리라고 할 수 있는 광복로는 더욱 심하다.
광복로 상인들의 모임인 광복문화포럼의 한 관계자는 “광복로의 경우 권리금이 한해 영업수익과 비슷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금액이 형성된 곳도 있다”면서 “대기업들이 꼭 매출뿐만 아니라 메인거리에 점포가 있다는 상징성과 홍보 효과를 노리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그동안 이곳 일대의 부활을 이끈 토박이 영세상인들이 역설적으로 내쫓기고 있는 점이다.
광복문화포럼 조사결과 지난 2005년 광복로의 400여 개 매장 가운데 80%가 토박이 개인상점이었는데, 현재 380개 매장 중 토박이 상점은 10%에 그치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점과 본사 직영점이 대신 자리를 잡았다.
비엔씨 빵집에 밀려 맥을 못 추던 프랜차이즈 빵집은 비엔씨가 골목으로 내쫓긴 뒤 점포를 2곳으로 확장해 세를 불렸고, 토박이 우동집이 사라진 자리에는 수도권에만 있다는 유명 아이스크림 매장이 부산지역 첫 점포를 개설했다.
김명화 중구 경제진흥계장은 “구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권리금의 동향이나 실태에 대해 파악할 예정”이라며 “구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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