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자살’ 전문가 진단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45)씨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국정원이 철저히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그 이유를 미뤄 짐작할 근거는 사실상 19일 공개된 1장의 유서와 해킹 프로그램을 직접 구매하고 운용했던 그가 최근 처해 있었을 난처한 상황에 대한 추론밖에는 없다.국정원장 등 앞으로 남긴 유서에 임씨는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란다”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공직자들은 보통 자기 조직에 강력한 보호 본능을 갖도록 요구받고 교육받는다”면서 “이 때문에 자기 조직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민간 조직 사람들보다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과 같이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극단적인 상황에서 강력한 대처를 요구받는다는 점도 당사자의 심적 부담을 한층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궁지에 몰렸을 때 국정원 직원이 자살을 선택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핵심 피의자였던 국정원 대북담당의 권모 과장은 자신의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시도했다. 권 과장은 당시 “검찰이 국가를 위해 일해 온 대공수사국 요원들을 위조 날조범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매우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임씨의 유서는 문장의 구색을 다 갖춰서 차분하게 쓰여져 있다”며 “당사자가 ‘사적 개인’이 아닌, 역사와 민족을 책임지는 큰 사람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고 개인 감정을 풀어냈다기보다는 조직 전체의 논리가 많이 개입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은 그의 유서 곳곳에 나타나 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는 부분에서 ‘대테러’와 ‘공작’ 사이에 ‘대북’ 등을 삽입했다.
한국범죄심리학회 부회장인 김상균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비롯해 조직에 흠집을 냈다는 자책감이 임씨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5-07-2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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