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사건’ 사과했지만…또다른 숙제 안은 경찰

‘백남기 농민 사건’ 사과했지만…또다른 숙제 안은 경찰

입력 2017-06-18 10:31
수정 2017-06-1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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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선택’ ‘한입으로 두말’ 내부 여론조차 분분

최근 이철성 경찰청장이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한 이후 경찰 내부에서는 복잡한 기류가 감지된다.

경찰이 국민 요구를 받아들여 ‘인권친화적 경찰’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검찰 수사 종료 후 사과 여부 판단’이라는 종전 입장이 갑자기 뒤집힌 것을 비판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청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백씨 사망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 결과 경찰 잘못이 명확히 밝혀지면 유족에게 사과할 수 있다”며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종전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이 백씨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자 이 청장은 불과 하루 만에 사과 입장을 내놓았다.

청와대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의 전제조건으로 경찰에 인권문제 개선을 주문했고, 경찰이 그런 방향으로 자체 개혁을 추진하기로 한 이상 백남기 농민 사건은 어떻게든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과제였다.

국민 의견을 반영하고자 경찰 스스로 꾸린 경찰개혁위원회에도 진보성향 인사가 다수 포진했고, 이들이 백씨 사건에 대한 사과를 경찰개혁 의지의 증표로 요구할 것인 만큼 경찰이 이를 외면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찰 조직 일각에서는 지휘부가 청와대의 ‘인권경찰’ 요구에 부응한 이후 백씨 사건에 관한 입장 표명이 머지않아 나올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후 전개 과정을 볼 때 이번 사과가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입장 발표 여부를 놓고 지휘부 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렸다는 말이 들릴 만큼 경찰 조직 안에서 백씨 사건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일선 경찰관 가운데는 이 청장의 사과 발표를 접하고 “한 입으로 두말을 했다”며 실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는 ‘법을 집행하는 일선 경찰관들을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죄인으로 몰았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일부 경찰관은 “청장의 사과 표명은 조직을 대표해 책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니 사퇴까지 하는 것이 옳다”는 강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불법·폭력시위 진압이라는 정당한 법 집행을 했을 뿐인데 사과가 왜 필요한가”라며 백씨 사망사건과 인권문제를 분리하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청장은 경찰이 그간 고수한 입장을 내려놓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두발언을 통해 사과를 발표한 경찰개혁위 발족식 직전까지도 발언문을 계속 손질하며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과 입장을 밝히는 절차와 형식 등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유족에게 사과드린다’는 말을 했음에도 사전에 유족을 만나 사과하려는 시도가 없었고, 별도 기자회견도 아닌 경찰 행사에서 모두발언으로 입장을 발표했다는 점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경찰 내부에서도 나온다.

이 청장의 사과는 결과적으로 경찰에 또 다른 숙제를 제공한 셈이 됐다.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는 유족에게 경찰이 어떤 식으로 다가갈지, 조직 내부의 여러 목소리에 어떻게 반응할지 등이 새로운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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