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봉투 이젠 안녕”…공무원시험 화장실 이용 첫 허용

“소변봉투 이젠 안녕”…공무원시험 화장실 이용 첫 허용

입력 2017-09-26 15:16
수정 2017-09-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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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수용…수원인권센터가 2015년 문제 제기

‘남성은 시험실 후면에서 소변봉투로 용변, 여성은 시험관리관이 우산 등으로 가림막을 친 후 용변토록 조치’

얼마 전까지 실시된 국가 및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의 시험감독관 근무요령 지침 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 23일 전국 16개 시·도 62개 시험장에서 시행된 ‘2017년도 지방공무원 7급 공채 필기시험’에서는 이같은 지침이 사라진 채 공무원시험 역사상 처음으로 응시생에게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이 허용됐다.

공무원시험 응시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받아온 ‘소변봉투’ 사용 지침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날 7급 필기시험 당시 화장실 이용은 140분간의 시험 시작 후 30분부터 시험 종료 전 20분까지 1회에 한해 가능했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전자기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금속탐지기 검사를 거쳤다.

1960년대 공무원 임용시험이 시작된 이후 응시자가 시험 도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소변봉투라고 불리는 휴대용 소변기로 해결해야 했다. 공무원 임용시험 도중 응시자들의 화장실 출입이 원칙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공무원 임용시험 때에는 시험장 뒤편 공간에 양동이를 비치해 용변을 보도록 했다. 이후 양동이가 없어진 대신 소변봉투가 등장했다.

장애인이나 임신부의 경우에만 사전 신청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화장실 이용을 허용할 뿐이다.

배탈 등으로 불가피하게 화장실을 사용하면 그 시점까지 작성한 시험지를 제출하고 퇴실해야 한다. 재입실은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시험 도중 용변이 급하면 남성과 여성 응시자 모두 시험관리자에게서 소변봉투를 받아 시험장 후면에서 용변을 봐야 했다.

남성은 그냥 서서 해결해야 하고, 여성은 시험관리관이 우산 등으로 가림막을 쳐 가려주는 것이 그나마 여성에 대한 배려라면 배려였다.

일부 응시자들은 ‘인권침해’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런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면 다른 응시자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시험 도중 소변봉투를 사용한 사례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무원 임용시험 주체인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는 소변봉투 사용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있지 않다.

‘공정한 시험’이라는 원칙에 밀려 무시됐던 공무원시험 소변봉투 인권침해 논란은 수원시인권센터가 지난 2015년 9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면서 이슈가 됐다.

수원시인권센터는 같은 해 6월 27일 경기도 30개 시·군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화장실 이용을 제지당한 한 응시자의 항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이후 센터는 화장실 이용 대신 소변봉투를 사용하도록 한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면서 당시 행정자치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다른 시험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수능이나 토익, 삼성 등 대기업과 공기업 입사시험에서는 시험시간 중 화장실 이용을 허용한다.

특히 수능의 경우 수험생과 같은 성별의 복도감독관이 동행해 사용할 화장실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응시자의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센터의 요구에 대해 행자부는 시험의 공정성이 우선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센터는 같은 해 9월 3일 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1년여 만인 지난해 8월 24일 인권위가 인권이 침해되지 않게 제도를 개선해 시행할 것을 행자부 장관과 인사혁신처장에게 권고했다.

이에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을 담당하는 행안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올해 처음으로 지방공무원 7급 임용시험에 화장실 이용을 허용했다.

국가공무원 임용시험을 담당하는 인사혁신처는 ‘화장실 이용 사전 신청제’를 새로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응시자가 시험 전에 미리 화장실 이용 신청을 하면 그런 응시자만 따로 모아 시험을 보게 하면서 지정된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수원시인권센터 박동일 시민인권보호관은 “지방 인권센터의 권고가 중앙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치분권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는 요즘 중앙과 지방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시민 인권보호 정책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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