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 어려워 대부분 무혐의…국정농단 여파 1년새 고발 4배로
문무일 검찰총장
최근 검찰 내홍은 전국의 비리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반부패부장이 일선 검사의 수사에 관여한 게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검찰 수뇌부와 일선 수사 조직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자문단에게 판단을 맡긴 끝에 결국 불기소 판정을 받았다.
20일 대검찰청의 연도별 범죄분석 자료를 보면 2016년 검찰이 처분을 내린 직권남용 피의자 553명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14명만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이 수사한 피의자 40명 중 1명꼴로만 기소되는 셈이다.
재판에 넘겨진 14명 중 구속기소된 경우는 3명, 불구속 기소 7명, 나머지 4명은 약식기소였다.
불기소 처분의 91.1%인 504명이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따져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는 4명에 불과했다. 2015년에는 539명 중 19명(3.5%), 2014년에는 476명 가운데 15명(3.1%)만 재판에 넘겨져 해마다 기소율이 비슷했다.
직권남용죄 불기소 비율은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다른 죄목보다 월등히 높다. 뇌물수수의 경우 재작년 이 혐의로 수사받은 공무원 264명 가운데 절반 넘는 141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형법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에 없는 일을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겉으로는 공무원이 직무집행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한을 벗어난 행동이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검찰 내홍 사태는 지난해 12월 당시 안미현 춘천지검 검사가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 보좌관에게 출석 통보를 하자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검사장급)이 대검에 보고하지 않고, 보좌관을 소환하려 한 이유를 추궁한 일 등이 문제가 됐다.
김 검사장은 불필요한 잡음이 나지 않도록 정치인 보좌관을 조사할 때 대검에 보고하도록 한 내규를 지키라는 취지의 적법한 수사지휘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강원랜드 수사단은 김 검사장이 권 의원과 통화한 후 사건에 개입한 점을 근거로 대검 반부패부장의 권한을 벗어나 수사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봤다.
같은 검사이자 법률가이지만 직권남용을 보는 양측의 시각은 확연히 갈린다. 어디까지가 상급자의 적법한 권한 행사이고, 무엇이 부당한 지시인지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이 일단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해도 법원에서 유죄를 받기도 쉽지 않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을 좌천하는 데 관여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태근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성추행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범죄성립에 다툴 부분이 많다”는 사유로 기각되기도 했다. 두 경우 모두 직권남용 사건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그동안 흔치 않던 직권남용 사건이 재작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고위 공무원들에게 줄줄이 적용되면서 공직사회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고발되는 사건도 덩달아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검에 따르면 직권남용 고소는 2016년 3천7건에서 지난해 5천920건으로, 직권남용 고발은 같은 기간 474건에서 4배가 넘는 1천959건으로 증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사와 검사 등 공무원을 상대로 한 화풀이성 고소·고발도 많아 전체 사건 건수에 허수가 포함돼 있다”면서도 “그동안 묻혀 있던 성범죄가 드러나듯, 직권남용 역시 그동안 경직된 상하관계에 억눌려 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시대적 흐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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