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19-01-20 22:32
수정 2019-01-2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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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증손자 이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항일운동 구심점이던 고종 ‘日 독살설’
백성들 공분… 장례일 계기로 3·1운동
당시 황제에게만 사용했던 경칭 ‘만세’
국호와 더불어 ‘대한독립 만세’ 외친 것
고종 황제
고종 황제
“올해는 고종 황제 승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개 3·1 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도화선이자 기폭제가 된 고종황제 승하 100주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잇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역사 교육이 부족한 점이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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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이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57·본명 이상협)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종 사망 100주년 소회를 묻자 “만감이 든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인 이구 황태손(皇太孫·황제의 적장손)이 타계한 이후 양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맡았다. 또 조선시대 왕이 직접 참여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 조선왕릉 제향의 ‘초헌관’으로도 참여한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0분쯤 사망했다.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채 안 돼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해 일부 역사학자와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됐다. 이런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고종의 후손인 이 총재는 이 독살설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는 “고종 황제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 식혜, 커피를 마신 지 30여분 만에 시해됐다”며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이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다”고 견해를 밝혔다. 고종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의 공분을 일으켰고, 고종 장례일을 계기로 3·1 만세운동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고종을 어리석은 군주로 묘사했지만, 최근에는 재조명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구호에 대해 그는 “요즘은 만세가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다며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21일 오전 11시 30분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서 ‘고종황제 100주기’ 제향을 거행한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한 무덤이다. 그는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처럼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고종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의 후손들을 설득해 작년에 다 돌려받지 못한 유물들을 환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2019-01-2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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