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력 하나로 모으려 ‘허수아비 적’ 성소수자 세워”

“기독교 세력 하나로 모으려 ‘허수아비 적’ 성소수자 세워”

김지예 기자
김지예 기자
입력 2019-05-29 23:14
수정 2019-05-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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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운동 자캐오 성공회 신부

성서, 시대 배경 고려해 새롭게 봐야
현재 시점에 맞춰 동성애 해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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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길찾는 교회’에서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영대를 목에 걸고 무지개색 전례도구로 예배를 집전하는 자캐오 신부. 자캐오 신부 제공
서울 용산구 ‘길찾는 교회’에서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영대를 목에 걸고 무지개색 전례도구로 예배를 집전하는 자캐오 신부.
자캐오 신부 제공
“기독교가 내부의 결속과 통제를 위해 성소수자라는 일종의 ‘허수아비 적’을 세운 것이죠.”

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5월 21일~6월 9일) 기간을 맞아 동성애 혐오 집회가 잇달아 열리는 가운데 자캐오(45·본명 민김종훈) 성공회 신부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개신교 내부의 성소수자 혐오를 하나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여성이나 유색인종을 차별했던 역사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조성해 세력을 결집하려는 게 성소수자 혐오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자캐오 신부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에 적극 앞장서 온 종교인 중 한 명이다. 20회째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와도 인연이 깊다. 동성애 반대 집단이 축제를 막으려 했던 2014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퍼레이드 직전 축복식을 했고,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모임 ‘무지개 예수’ 소속으로도 참여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성공회 교회들’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부스를 운영한다.

자캐오 신부가 성소수자 문제를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는 10여년 전 한 교인과의 만남이었다. 게이였던 교인을 마주하고 “하나님은 당신도 사랑하신다”고 답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갈등과 고민이 생겼다. 그 교인은 더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신부는 “신이 보낸 그를 있는 그대로 환대하지 못했다”는 아픔을 느꼈다. 이후 성소수자 문제를 더 공부했고 성수자와의 연대를 의미하는 무지개 묵주를 만들어 주변에 나눴다.
지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성공회 길찾는교회 교인들과 자캐오 신부(맨 오른쪽)가 2018년 무지개 깃발 퍼포먼스 징계 소송 중인 장신대 학생들을 지지하기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 자캐오 신부 제공
지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성공회 길찾는교회 교인들과 자캐오 신부(맨 오른쪽)가 2018년 무지개 깃발 퍼포먼스 징계 소송 중인 장신대 학생들을 지지하기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 자캐오 신부 제공
그는 “성서에 동성애 금지가 적혀 있으므로 동성애를 반대해야 한다”는 일부 개신교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성서가 쓰일 당시 군주제와 가부장제가 팽배했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21세기에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그는 “성서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읽는 것이고 오늘날의 변화를 고려해 늘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서를 단순히 해석하면 출산하지 않는 부부나 이성애로 결합되지 않은 가족 모두가 배제된다”며 “동성애에 반대하는 측은 성서의 다른 내용은 현재에 맞춰 해석하면서 동성애에만 유독 다른 잣대를 댄다”고 비판했다.

세계 성공회에서도 성소수자는 민감한 주제여서 토론을 거듭하는 중이고 아직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달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 맞은편에서는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연합이 축제 형식의 집회를 연다. 자캐오 신부는 “일각에서는 혐오할 권리를 주장하지만 이것은 권리가 아니다. 무관용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워야 또 다른 혐오를 막을 수 있다”면서 “교회가 적을 만들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기보다 낯선 이웃을 존중하는 본래 목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9-05-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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